[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한 지난 15일 광복절은 북한 공작원(문세광)에 의해 자신의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지 꼭 39년이 된 날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급히 귀국길에 오른 당시 22세 박근혜는 "수만 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놓았고 어찌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인생행로의 첫 날이기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매년 참석하던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가는 대신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절 경축사를 읽었다. 북한에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자고 제의했다. 오히려 일본에 대한 것보다 더 많은 분량과 시간을 할애해 북한을 이야기했다. 박 대통령은 "진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며 열린 마음으로 북한을 적극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과의 개인적 악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1년 전 박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합의한 7ㆍ4 남북공동성명을 이행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습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자 "사과를 받으러 북한에 간 것이 아니었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북한이 연루된 불행한 개인사는 박 대통령이 가진 투철한 안보의식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단 68년, 통일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시점에 대통령에 오른 그가 개인적 감정을 드러낸 건 여름휴가지인 저도의 모래사장에서 뿐이었다. '철의 여인' 박근혜의 진면목이 8.15 경축사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던 전쟁의 기억과 도발의 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신뢰와 화합, 협력의 공간으로 만드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밝지만 단호한 표정이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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