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출구전략 발언이후 주저앉은 시장…한달만에 살아났다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이른바 '버냉키 쇼크'로 급격히 얼어붙었던 회사채 시장이 한 달여 만에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만성 부진을 보였던 건설업에도 오랜 만에 자금이 들어왔다. 금리 변동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인데, 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 출구전략이 시행될지가 변수로 꼽힌다. 정부의 회사채 정상화 대책이 얼마만큼 영향을 발휘할지도 관건이다.
◆눈치보던 기업들 앞다퉈 발행 = 1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화건설(A0)은 지난 12일 회사채 2500억원을 발행했는데, 연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가 700억원을 인수했다. 전량 매각에는 실패했지만 그동안 업황 불황으로 발행 실패가 '당연시'되던 건설사에 자금이 들어왔다는 데 시장은 주목했다. 건설사는 업종 리스크로 인해 AA급 우량등급 기업도 회사채 발행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A급 건설사에 기관이 투자를 결정할 정도면 회사채 시장 위축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아니냐는 게 시장의 평가다.
지난 5~6월 미국 출구전략이 언급되며 국내 채권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채권 금리가 요동치며 변동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금리는 오르고 투자자는 나타나지 않자 기업들도 일제히 회사채 발행을 멈췄다. 증권사와 주관 계약을 맺은 후 발행 시기를 늦추는가 하면, 일부 기업은 수요예측까지 실시해 놓고 발행을 철회하기도 했다. 지난달 정부가 "회사채 시장이 고사직전"이라며 차환지원 등 정상화 대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재개한 건 시장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채 10년물 기준 지난 6월 한 달 변동폭은 56bp(1bp=0.01%포인트)에 달했지만 이달에는 10bp에 머물고 있다. 금리가 요동을 멈추자 투자자도 지갑을 열어젖혔는데, 지난달 31일 발행한 LG전자 회사채가 계기였다. LG전자는 애초 2000억원을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수요예측에서 자금이 몰리자 발행액을 4000억원으로 2배 증액했다.
LG전자의 흥행을 목격한 기업들은 하나 둘씩 회사채 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이달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발행을 검토 중인 기업은 20여곳에 육박한다. 삼성에버랜드가 이달 3000억원 발행을 준비 중이고 현대제철 1000억원, 현대하이스코 1000억원, LG유플러스 2000억원, CJ대한통운 2000억원, 삼천리 2000억원 등도 발행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 롯데케미칼, CJ CGV, SK케미칼 등도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내달까지 발행될 회사채가 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FOMC결과 따라 다시 얼어붙을수도 = 되살아난 불씨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내달 FOMC에 달려 있다. 내달 양적완화 축소 시행이 결정되기라도 한다면 채권 시장은 다시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경제 전문가 중 53%는 "미 연준이 9월부터 양적완화 축소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는 점도 내달 출구전략 시행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대호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금리 변동성이 다소 잦아들면서 상위등급부터 투자대기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모습은 긍정적"이라면서도 "9월 FOMC 결과에 따라 개선 흐름의 경로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정부는 오는 20일 첫 회사채 차환지원 심사를 실시한다. 지난달 이후 현재까지 차환지원을 신청한 기업은 두산건설, 한라건설 등 2곳으로 신청 수는 다소 저조한 상황이다. 두산건설은 내달까지 900억원, 한라건설은 1100억원 회사채가 만기를 맞는다. 지원이 결정되면 정부는 차환 자금 중 80%를 인수해 준다. 전문가들은 연말께로 갈수록 A등급 이하 기업을 위주로 지원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원하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단기적인 회사채 부실 발행 가능성은 낮아졌다"며 "그러나 단기 유동성 지원 방안으로 시간을 번 동안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져야만 실제 회사채 위험이 감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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