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모 공중파 방송의 9시 뉴스(아, 이것이 특정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를 보는데, 기자의 리포트 말미에 "엠비시 뉴스 기막힙니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하도 기막힌 멘트라서 누가 리포트를 하는지 봤더니 기자의 이름이 '김학희'였다.
그걸 빨리 읽으니까 '기막힙니다'가 되는데 정말 기막힌 바이라인이었다. 난 그때 불현듯 미국인들이 영어를 빨리할 때 내가 못 알아듣는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어쨌든 그 이후 바이라인이 '기막힌' 그 기자의 팬이 됐다.
신문 기자는 바이라인을 글로 쓰지만, 방송 기자는 바이라인을 말로 한다. 1분30초 분량의 방송 리포트가 끝나고, 기자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들을 수 있는 '○○○뉴스, 김아무갭니다'고 하는 게 바로 방송 기자의 바이라인이다. 열 글자도 안 되는 짤막한 말이지만 이 바이라인이 참 묘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읽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아주 어색한 기자도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방송 기자의 클로징은 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이름이 김삼순이라고 했을 때 '○○○뉴스 김-삼-순입니다'고 읽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뉴스 김~~삼순입니다'고 클로징을 하는 기자도 있다. 방송 기자로 입사해서 첫 리포트를 하는 것을 '입봉'이라고 하는데, 입봉에서 가장 마지막 관문이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읽는 것이다. 지금은 은퇴한 방송 기자 중엔 자신의 바이라인을 정말 감칠맛 나게 읽어 그 업계의 전설이 된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내친김에 이름 얘기를 좀 더 하면 '나○○'씨는 건방진 이름이다. 왜냐면 '나, ○○입니다'고 자신을 소개하니까. 그에 비하면 '전○○'씨는 상당히 겸손한 이다. '전, ○○입니다'고 자신을 낮춘다. 기자 중에선 '이기자'가 파이팅이 넘치고, 이기자보다 화끈한 기자가 '주기자'다. 정직하지 못한 기자는 '소기자'요, '박기자'는 변화를 좋아하는 이다. 고집이 센 '우기자'도 있다. 20대의 '노기자'가 있는가 하면, 남의 품을 좋아하는 '안기자'도 있다. 이런 식의 성(姓)희롱이야 아무리 많이 해도 지탄받을 일이 없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不亦樂乎아).
글=여하(如河)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