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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종로 피맛골의 추억'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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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서울 46. 추억, 길을 잃다

[아시아경제 김지은 기자]]

[서울스토리]'종로 피맛골의 추억'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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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가 되면 퇴근한 직장인들이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걸치며 왁자지껄하게 하루의 피로를 풀었죠. 1970년대에는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잘살지 못해 많은 이들이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피맛골의 작은 음식점들을 찾았어요. 값은 쌌지만 대부분 음식 맛도 아주 좋았어요"

19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활동했던 한 전직 언론인의 말이다.


'피맛골(避馬골)'. 서울의 중심 도로인 종로의 뒤편으로 나 있는 이 골목은 서민들의 골목, 서민들의 마당이었다. 허름하고 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한 이 골목에서 서울의 보통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나누며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았다. 낙지며 족발이며 빈대떡이며, 이 골목의 음식들은 그 저렴함과 맛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어쩌면 이 골목의 진짜 '음식'은 사람들의 정이었으며 그들의 웃음과 눈물,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사연들이었는지 모른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때부터 서민들이 찾는 삶의 공간이었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종로3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대로는 조선시대 때 궁궐과 관가가 가까워 가마나 말을 탄 고관대작들의 왕래가 잦은 길이었다. 그 당시에는 하급 관료나 서민들이 큰 길을 가다가 고관대작을 만나면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해야 했다. 서민들은 그래서 종로 큰길 양쪽 뒤편의 좁은 골목을 통해 다니게 됐고 이 좁은 골목이 '말을 피하는' 골목이라 해 '피맛골'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백년간 서민들의 길이요, 휴식처가 돼 온 피맛골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서울시의 개발 바람이 피맛골을 휩쓸었다. 2008년에 서울시 도시ㆍ건축공동위원회에서 청진구역 제1지구와 제2∼3지구, 제12∼16지구에 대한 정비계획안이 가결됐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구역에 속한 피맛골 일대가 재개발되기 시작했다.

[서울스토리]'종로 피맛골의 추억' 지금은…


40년전부터 청진동 피맛골 일대에서 음식점을 운영했고 현재는 종로구청 앞 오래된 건물에서 아들과 족발집을 운영하는 한 할머니는 "재개발이 시작된 이후 음식점들이 많이 줄었다. 몇몇 음식점들은 강남쪽으로 옮기고 몇몇 음식점들은 이 근처에 세워진 큰 빌딩에 들어섰지만 손님이 줄고 세가 비싸 망할 지경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족발집도 2~3년 안에 없어지고 대신 공원이 들어설 거라고 했다. "피맛골 음식점들은 이제 다 없어지는거지 뭐"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울스토리]'종로 피맛골의 추억' 지금은…


족발집 할머니가 말한 '큰 빌딩'에는 피맛골의 맛을 대표했던 '미진', '서린낙지', '청진옥', '청일집'이 들어가 여전히 손님들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음식의 맛은 음식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피맛골 원조 낙지집을 지나던 한 노인은 "빌딩 안에 들어간 집의 음식을 먹어보면 영 옛날 맛이 안 난다. 옛날 같은 정취가 없다"고 말했다.


녹두빈대떡과 어리굴젓을 곁들인 막걸리로 유명했던 청일집의 옛날 모습은 역사의 일부가 돼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청일집이 큰 빌딩으로 이전하면서 주인이 기증한 가게의 '유물'들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전시된 옛 청일집은 간판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벽에 남겼던 낙서와 집기, 메뉴판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피맛골에 없는 피맛골이 박물관의 기념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산악인의 뒷풀이 장소', '00년 0월 0일 00 다녀감', '맑음 사랑 생명'... 청일집 벽면의 낙서들에서 이 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서울스토리]'종로 피맛골의 추억' 지금은…


마침 전시관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들어왔다. 그들에게 한 어른이 피맛골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겐 피맛골은 옛 사람들의 무덤 속에서 나온 유물들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1960~80년대 피맛골에 있었던 맛집과 다방들도 대다수 사라졌지만 이곳을 자주 찾았던 사람들 역시 세상을 떠났거나 백발의 노인이 됐다. 피맛골 인근에서 간이매점을 운영하는 한 할머니는 "최근 10년간 피맛골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싹 바뀔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0년에 피맛골 개발 계획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도시계획이 수립된 지 이미 10년이 넘어 도시계획을 바꾸기가 여의치 않다"며 그대로 밀어붙였다.


도시에서 골목은 왜 필요할까. 뛰어난 디자인 도시로 평가받는 도시 중 하나인 런던. 한국의 많은 도시들이 닮고 싶어하는 선진도시인 런던은 그러나 미련해 보일 만큼 변화가 느린 도시다. 오래된 것을 철저히 보존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런던을 찾는 이유는 이런 런던만의 전통과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며 재개발을 벌여 온 서울. 피맛골은 도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어야 할 서민들의 일상과 문화를 희생한 도시개발의 한 기념관이 되고 있다. 피맛골을 없앤 자리의 한켠에 세워진 피맛골 기념 시설, 그것은 참으로 공허하고 기괴 한 풍경이다.




김지은 기자 muse86i@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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