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 문제로 결국 제대로 열리지 못한 가운데 북측 수석대표로 거론된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사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겸 통일전선부장을 당국회담 단장(수석대표)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북한은 통일전선부장이 남측의 통일부 장관보다는 위상이 높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장관이 남북관계의 최고 수장은 맞지만 당이 중심인 체제에서 당 중앙위 위원이자 대남담당 비서인 통일전선부장의 위상이 더 높다는 것이다.
북측의 이런 입장은 과거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난 2007년까지 총 21차례에 걸쳐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통일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선 데 비해 북측은 내각 책임참사가 단장으로 나섰다.
내각 책임참사 자리는 일종의 무임소장관 격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그동안 장관급회담에 나선 북측 전금진, 김령성, 권호웅 등은 장관급으로 보기에는 비중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과거 남북차관급 회담에는 이봉조 전 통일부차관의 상대로 김만길 조평통 부국장이 나온 적이 있다.
북측이 이번 회담 단장으로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내세우며 남측 수석대표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요구한 것도 이 같은 과거 관행에 집착한 탓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 개최를 위한 9∼10일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회담 명칭을 '남북당국회담'으로 먼저 제안한 것도 우리 정부의 '김양건 단장' 요구를 피해가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됐다.
강지영 서기국장은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3년전인 1990년 7월26일 8·15범민족대회 제2차 예비회담 북측준비위원회로 참여했다가 서울에 오기도 전에 남북 이견차로 무산된 전력을 갖고 있다. 당시 강 국장은 김책공업종합대학 대학생신분으로 북측대표단 5명가운데 한명이었다.
당시 강 국장이 속한 북측대표단은 영접절차와 회담장소 등을 범민족대회 행사를 준비하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측 주장대로 하지 않을 경우 입경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회담은 무산됐다.
이후 강국장은 2004년 6·15 공동선언실천 남북 해외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 위원을 거쳐 201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의장을 역임했다. 또 2005년에는 8·15 민족대축전 북측 준비위원회 종교분과 위원을 지냈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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