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죽어가니…함께 묻히는 '순장(殉葬) 직업'
연봉 동결해도 붙어있는게 감지덕지…'생계형 연구원'으로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들의 위상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흐름을 분석하고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를 냉정하게 짚어내는 '전문가'로서의 입지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주식시장 장기침체로 증권사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자 돈만 축내는 미운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할 판이다.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리대상 '0순위'로 꼽힌다. 능력을 인정받고 거액에 스카우트되는 사례는 이제 전설로 치부된다.
◆좁아지는 입지, 늘어나는 한숨=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국내외 증권사에 몸담고 있는 애널리스트는 총 1423명이다. 지난 2010년 6월 현재 1523명과 비교해 불과 3년 사이에 100개 자리가 없어졌다. 같은 기간 증권사 수가 늘었음을 감안하면 구조조정 폭은 더 컸던 셈이다.
올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금투협에 등록된 애널리스트들의 숫자는 지난 3월 1464명, 4월 1458명, 5월 1432명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62개 증권사 가운데 18곳은 애널리스트가 10명도 채 안된다. 리서치센터라고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싱크탱크를 보유하고 있는 증권사가 30%에 달하는 셈이다.
한 대형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증권업계의 이슈는 비용통제와 감축"이라며 "그 직격탄을 맞는 곳이 리서치센터"라고 푸념했다. 그는 이어 "규모를 갖춘 곳은 감축을, 규모가 영세한 곳은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인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러니 임금 동결에도 감사해야할 판이다. 지난 3월 연봉계약을 체결한 애널리스트 상당수가 감봉을 통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협 관계자는 "예전에는 증권사 간 애널리스트들의 이동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장이 좋지 않아 그마저도 뚝 끊긴 것 같다"며 "연봉인상은 고사하고 현재의 자리를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애널리스트는 외근 중= 증권사들이 저마다 생존전략을 찾으려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자 애널리스트들도 영업 활동에 전방위적으로 동원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기업체, 기관투자자 등 각 분야 관계자들과 이어지는 미팅 랠리로 하루 일과를 채우는 날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애널리스트들이 영업에 관련된 활동을 해왔지만 비매출 부서인 리서치센터에 대한 눈치와 압박이 점점 심해져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연구원들은 주로 회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 등과 관련된 주관사 선정 등의 영업 지원활동에 나서고 있다. 대형증권사의 한 리서치센터장은 "주말에는 리포트 작성 대신 상장사 간부들과의 골프접대에 나서는 등 영업지원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리서치센터 소속 한 연구원은 점차 달라지고 있는 위상에 대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의도 증권맨들이 고액 연봉으로 콧대 높던 시절은 이제 옛날 이야기"라며 "기관 투자자들 앞에서는 '을 중의 을' 취급을 받고 주말에도 사무실을 지키는 신세"라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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