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프랑스인의 역설' 정도가 되겠다. 프랑스인들이 미국인들 못지않게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 결과를 말한다. 1991년에 미국 CBS방송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연구팀은 55~64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서 허혈성 심장병 사망률과 국민소득, 의사와 간호사의 비율, 지방 섭취량 등에 대한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와인 소비량이 많은 나라일수록 사망률이 낮다는 통계결과가 나왔다. 이는 레드와인에 함유돼 있는 폴리페놀이라는 성분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연구결과엔 알코올의 유해성이 배제돼 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이 허혈성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은 낮지만, 알코올로 인한 질병이나 사망 비율은 타 국가에 비해 오히려 높다고 한다.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또 굳이 놀랄 만한 통찰력이 없더라도 사후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설명 못할 것이 없다. 약간의 상식만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현자(賢者)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컬어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아닌 후견지명(後見之明)이다.
예를 들어서 부자일수록 수명이 길다는 임상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당연하지. 부자면 입고 먹고 사는 게 좋으니까 아무래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지. 병원에도 미리미리 가게 되니까 아무래도 평균수명이 늘어나지"라고 생각한다. "뭐 이런 당연한 것도 논문이라고 쓰나"하는 평가도 나옴 직하다.
반대로 부자일수록 수명이 짧더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이때에도 사람들은 "부자들이라면 상대적으로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을 섭취할 기회가 많고 걷기보다는 차를 타고 다닐 테니 운동량도 적게 되는 것 아닌가. 소위 말하는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게 당연해"라고 생각한다. 결과에 따라 원인을 짜 맞추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인식의 오류로 인해 생기는 오해의 예는 이 밖에도 수없이 많다.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지만, 비행기를 탈 때 자동차에 탈 때보다 수십 배 공포감을 '실제로' 느낀다.
상식적으로 A라는 결과가 받아들여지기 쉽다면, A가 아닌 결과는 의외성을 띠어야 한다. 그러나 사후적으로 벌어진 일을 설명하는 데는 이런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기업 성공의 비결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업은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루고 쥐어짜서 성공했지만(일본전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망한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지금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독창성과 창의성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스티브 잡스는 한때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이사진에 의해 쫓겨난 인물이다. 화려한 무대 매너를 자랑하며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나이스'한 스티브 잡스와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을 만나면 독설을 퍼붓는 '어글리' 잡스는 유감스럽게도 동일인이다. 어떤 기업에선 인센티브가 직원들을 동기 부여시키지만 또 다른 상당한 기업들은 인센티브가 직원들 간의 위화감을 조장한다.
모든 정책엔 피드백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후견지명 스타일의 품평이 돼선 곤란하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같이 여러 차례 실패의 경험이 있는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후적인 품평은 관전자나 해설가의 몫이지, 작전을 짜고 맞붙어서 승리를 따내야 하는 감독의 몫은 아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포함해 금융정책을 추진하는 당국자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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