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오랜만에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시부야에서 회의를 마친 후, 일본 최대의 통신사인 NTT 도코모의 휴대폰 매장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3와 함께 다른 회사의 스마트폰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였지만 세련되었고 결코 갤럭시S3의 디자인에 뒤지지 않았다. 소니의 신규 제품이 아닐까 생각하며 뒷면의 제조사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HUAWEI made in China' 중국산 스마트폰이 아키하바라의 매장 구석이 아닌, 도쿄 한복판의 NTT 도코모숍에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NTT 도코모는 일본 최대의 통신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제품의 도입 과정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전파인증은 기본이고 버그와 내구성 테스트, 부품의 신뢰도에 대한 까다로운 검사 과정은 해당 기업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잔인한 과정이기도 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테스트 속에서 끊임없이 요구하는 근거 자료와 데이터, 별 쓸모 없어 보이는 질문까지 반복되면 납품 담당임원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혀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인내심의 극한을 시험하는 과정을 중국산 스마트폰이, 아니 그 성질 급한 중국기업이 통과하다니 놀라기만 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일본 시장에 진입한 중국기업은 화웨이만은 아니었다. ZTE라는 또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역시 소프트뱅크와 제휴해 이미 일본 시장에 진입해 있었다. 현재 ZTE는 소프트뱅크 스마트폰 중 16.9%를 점유, 2위를 차지하고 있다. 5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상전벽해'가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인가.
기술경영학에서는 혁신적 제품의 진화 과정을 변이(variation), 선택(selection), 유지(retention)라는 세 과정으로 분류한다. 변이란 기존의 구제품과 다른 새로운 제품군이 출현해 서로 경쟁하는 과정이다. 스마트폰에서 보면 블랙베리 같은 버튼형, 손가락으로 제어하는 터치형 등이 서로 경쟁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두 번째의 선택 과정에서는 소비자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제품이 생존하고 다른 제품은 몰락한다. 이미 블랙베리는 패배해 시장에서 소멸하고 있고, 아이폰이 터치형의 표준을 확립한 후 전 세계의 스마트폰이 터치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 번째 '유지'는 선택의 과정에서 형성된 제품의 특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혁신이 멈추는 단계다. 성능보다는 가격이 중요해진다.
즉 가격 중심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후발기업이 선발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기다. 이런 가격 중심의 이전투구에 휘말리 않기 위해 기업들은 필사적으로 혁신의 사이클을 다시 변이 단계로 되돌리고자 몸부림친다. 구글이 안경형 컴퓨터를 개발하고, 애플이 손목시계형 스마트폰을 모색하는 것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여기서 어떻게 중국의 스마트폰이 일본 시장에, 아니 세계 시장에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바로 '유지 단계'이다. 유지의 단계에 접어들면 각 경쟁자들은 스마트폰의 다음 모델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기능의 고급화, 아니면 저비용, 저가격 스마트폰의 개발이다. 여기서 중국업체들이 추구하는 전략은 후자다. 물론 저가 스마트폰이라고 해서 소나타를 경차 모닝 수준으로 확 떨어뜨리는 단순 전략은 아니다. 중국업체는 현재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거나 약간 향상시키면서 경쟁업체보다 가격을 대폭 낮추는 코스트 전략을 구사한다. 최근 화웨이가 출시한 신제품은 아이폰5와 외형적으로 유사하지만 두께는 아이폰5보다 18%나 더 얇은 제품이다.
올해 1ㆍ4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0위 업체 중 중국업체는 4개나 되고, 중국 최대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와 LG전자의 점유율 차이는 0.4%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의 진화가 멈춘 지금, 승자는 중국기업이 될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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