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불과 9개월 전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퀸즈파크 레인저스(QPR)와 박지성의 희망은 결국 허무하게 사라졌다. 28일(이하 한국시간) 마제스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1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리그 최하위 레딩과 0-0 무승부에 그쳤다. 이로써 QPR은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다음 시즌 2부 리그 강등이 확정됐다.
▲'어떻게 올라온 1부리그인데….'
1882년 창단된 QPR이 1부 리그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968년이었다. 이후 몇 차례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다 1983-84시즌부터 다시 1부 리그에 합류했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창설 멤버이기도 했다. 줄곧 중하위권을 유지하던 QPR은 1995-96시즌 19위에 머물며 13년 만에 다시 2부 리그에 강등된다. 간판 공격수 레스 퍼디난드의 뉴캐슬 이적이 치명적이었다.
암흑기의 시작이었다. 이후 QPR은 2부 리그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급기야 2001-02시즌에는 3부 리그로까지 추락했다. 그래도 오랜 전통과 남다른 연고지팬들의 사랑 덕분에 2004-2005시즌 다시 2부 리그로 다시 올라섰고, 마침내 2010-11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했다.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가 QPR을 인수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15년 만에 돌아온 프리미어리그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적극적인 투자로 선수단을 보강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 시즌 간신히 볼튼을 따돌리고 17위로 강등을 모면한 수준이었다. 또 한 번 거액을 들여 박지성·삼바·그라네로·세자르 등을 영입하고 해리 레드냅 감독까지 데려왔지만 결과는 강등이었다.
▲재승격 가능성, 제로(0)에 가깝다
레드냅 감독은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 열심히 해 다음 시즌 곧바로 승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바람과 달리 QPR에겐 가시밭길이 예고됐다.
통상 2부 리그로 떨어진 팀은 재승격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다. 좋은 선수단을 보유하고도 부진을 거듭한 탓에 강등된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축 선수들 대부분은 팀을 떠나는 반면, 줄어든 스폰서 및 중계권 수익으론 기대만큼의 전력 보강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QPR 역시 곧바로 프리미어리그에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스타급 고액 연봉자가 많았을 뿐 아니라, 올 시즌 내내 이번 강등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팀을 향한 애정이 사라졌다. 박지성도 그 중 한 명이다.
설령 선수들이 남으려 해도 QPR은 이들을 데리고 있을 여력이 없다. 챔피언십은 다음 시즌부터 재정적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 Play) 제도가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한 팀은 적자 규모가 800만 파운드(약 139억 원) 이상이 될 수 없다. 반면 QPR은 지난 시즌 이미 2260만 파운드(약 392억 원)의 적자를 냈다. 올 시즌은 선수 영입에 더 많은 돈을 써 적자 규모가 2500만 파운드(약 435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은 고액 연봉 선수의 정리인 셈이다.
문제는 그렇게 하더라도 당장 다음 시즌 적자 규모를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무리한 투자와 부진이 반복돼 누적된 부채는 어느덧 9000만 파운드(약 1500억 원)에 달한다. 당장 홈구장 유지 등을 위해 1500만 파운드(약 256억 원)를 대출 받아야 할 처지. 주요 선수들을 모두 이적시키더라도 재정을 크게 개선시키기 힘들 뿐 아니라, 당연히 성적도 나오기 어렵다. 재승격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다음 시즌 재정적 페어플레이를 어길 경우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 2부 리그에 남는다면 곧바로 선수 영입 금지 조치가 내려져 사실상 전력 보강이 원천 봉쇄된다. 만에 하나 1부 리그로 승격한다고 해도 1000만 파운드(약 174억 원)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
또 다시 성적 부진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자칫 '파산'이란 극단적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재정의 급격한 악화로 추락일로를 걸었던 리즈 유나이티드와 포츠머스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