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현대미술' 교류展, 서울시립미술관서 열려
정치·욕망·부귀·우상 등 각종 사회상 표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일제식민지, 계엄령 선포, 도시화, 향토운동, 계엄령 해제 후 다원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시대적 맥락에서 몇 가지 두드러진 공통점을 지닌 국가. '대만'의 사회상과 예술의 발전상을 미술이라는 '돋보기'로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 9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한국-대만 교류전, 대만현대미술( Rolling! Visual art in Taiwan)'이다. 오는 6월 16일까지 개최되는 전시는 지난해 국립대만미술관에서 한국현대회화의 변화상을 조망한 '한국회화의 현재(Korean Painting Now)'전과는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대만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자리다. 대만 작가 32인의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아트 등 총 32점이 출품됐다.
챠이 샤오이 수석 큐레이터는 "현재 대만 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1960년대에서 현재까지 대만 현대미술의 전환점과 발전상을 선보인다는 목표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대만은 4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태평양 서쪽에 위치한 뱃길이면서 군사 요충지였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번갈아 통치(1624~1662년)하면서 서구 문화가 유입된 이후 반청항쟁기(1662~1683년), 청나라 통치 시기(1683~1893년), 일본 식민지 시대(1895~1945년)를 거쳤다.
당시 우리나라가 일제시기 서양현대미술을 접하면서 일본식 현대교육에 기초해 서양미술 양식과 기법이 들어온 것처럼 대만미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만미술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1949년 대만전역에 국민정부의 계엄령이 선포되지만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서양 현대예술사조가 함께 들어왔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이 특히 컸다. 작가들은 '추상화'로 사상검증과 정치적 금기를 피해 개인 창작 세계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 탄생한 것이 전통 형식을 타파하고 의식적으로 사고하자는 1957년 '현대화 운동'이었고, 1960년대부터는 개인의 사고를 중시하고 시대성과 독창성을 자각적으로 추구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게 됐다.
1970년대에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 '향토'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미술계에서는 '향토운동'으로 이어졌다. 중국 본토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사회상황 속에서 작가들은 남녀평등, 사람과 자연, 진실한 자아 등 다양한 관점을 창작 작품에 담아 선보였다. 1987년 38년만의 계엄령 해제 후 개방적인 민주사회로 거듭나는 가운데 예술가들은 정체성, 기억, 집단과 정치, 역사, 생태, 욕망 등 그동안 금기시돼 온 주제들을 작품에 담게 된다.
허우쥔밍(1963년생)의 '수신(搜神)'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신화와 민간 전설 이야기를 '시리즈' 형식으로 묶었다. 고서처럼 글과 그림을 병렬로 배치하는 형태를 츃했다. 글에는 '권계'의 의도가 드러나지만 그림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성욕'을 이미지화했다. 18개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8가지 서로 다른 욕망과 의지를 표현했다. 이 작품은 성을 금기시하는 터무니없는 윤리적 가르침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육체와 정신의 욕정 탐닉에 대한 성찰을 표현했다.
야오루이중(1969년)은 오랫동안 대만 대중의 천태만상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그는 인문적 시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료와 설치기법을 동원해 국토와 역사, 정체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번에 출품한 '수신공양기념비'는 중국 전통회화 중 금벽산수를 가져와 사진과 조각상에 금박을 입혀 대만 사람들에게 친숙한 혼례 장례 등 민간의식과 종교신앙을 담아냈다. '금박'을 사용해 부귀와 지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꼬집었다. 또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해 대만 사회의 소비문화, 유행풍조, 배금주의, 스타추종, 우상숭배 등 사회상을 표현했다.
린민홍(1964년)의 '무제-모임'이란 작품은 무용, 건축학, 문학, 음악, 철학, 인류학 등 전공의 학생 12명의 도움을 받아 문과 학생과 이과 학생이 한명씩 짝을 이뤄 창작활동을 벌인 결과물이다. 린민홍 작가는 "이 작품은 감성과 이성, 인문과 과학이 서로 융합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어쩌면 예술 자체가 작가 개인의 산물이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가치가 개입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만의 비디오 아트 전위인물로 알려진 위안관밍(1965년)은 시간과 기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사라져가는 풍경'은 작가의 집,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된 주변 공간, 부친이 작고한후 1년 동안 꿈속에서 만나는 기억 등을 빠른 속도로 옮겨 다닌다. 1984년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한 위안관밍은 주로 거주문제와 개인적인 일상을 주제로 비디오 작품을 만들고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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