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삼성전자가 샤프에 100억엔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면서 샤프에게 회생의 길이 열렸다.
지난 십수년 동안 글로벌 TV 시장에서 피튀기는 혈전을 벌였던 두 회사가 손을 맞잡으며 비즈니스 세계에선 '어제의 적도 오늘은 친구'라는 말을 새삼 실감케 하고 있다.
샤프는 지난 1998년 일본 브라운관 TV 시장에서 앞서고 있었던 소니, 파나소닉을 제치고 일본 LCD TV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패널과 TV 사업을 동시에 진행했던 샤프는 자사 패널을 소니, 파나소닉 등에 공급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시장에서 자신감을 얻은 샤프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삼성전자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린 삼성전자는 LCD TV와 패널 사업 모두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지난 2006년 샤프는 미국 시장에서 LCD TV의 대대적인 가격 인하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엔저로 인해 샤프의 가격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삼성전자의 동급 LCD TV 대비 최대 40% 저렴한 제품까지 등장했다.
2007년이 지나며 엔화가 급등하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반격이 시작됐다. 당시는 원하가치가 낮을 때였기 때문에 샤프가 먼저 벌인 가격전쟁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며 샤프의 경영난이 시작됐다. 무려 4년 넘게 엔고 현상이 지속되며 샤프를 비롯한 일본 전자업계 전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시장을 넘겨줘야만 했다.
믿었던 일본 내수 시장서도 이변이 생겼다. 당시 샤프의 내수 시장 비중은 60%가 넘었다. 일본 내의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이어 발생한 대지진, 일본 내 디지털TV 전환 수요가 줄어들면서 샤프의 내수 매출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샤프는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했다. 지난 2010년 10세대 LCD 패널 양산 설비를 갖춘 사카이 공장 설립에 나선 것이다. 당시 LCD 패널 공장은 8세대가 가장 대형이었기 때문에 경쟁사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 LCD TV 시장이 대형화 될 때 막대한 수익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LCD 패널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초기 투자비를 건지지 못할 정도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글로벌 시장 상황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샤프는 전세계 LCD TV 시장에 총 1230만대를 공급했다. 삼성전자는 4300만대를 공급했다. 삼성전자가 3배가 넘는 TV를 공급하며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이룬 것이다. 샤프에게 더 이상의 운은 없었다.
벼랑 끝까지 몰린 샤프는 대만의 홍하이정밀에 투자를 받기로 했지만 추가 투자 부분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결국 지난해 말 삼성전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고 삼성전자가 이를 받아들여 샤프의 지분 3%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10세대 이상의 대형 패널 공장 설립에 투자하기 보다는 샤프에 투자해 안정적으로 대형 패널을 수급할 수 있게 됐다. 샤프는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양측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가 예상된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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