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아마 윤빛가람이란 선수를 가장 잘 아는 건 조광래 감독과 나 아니겠나. 제주에서 반드시 재기시킬 자신이 있다."
윤빛가람이 지난달 23일 성남 일화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로 전격 이적했다. 개막을 고작 일주일 남겨 놓은 시점. 갑작스러운 결정인 듯 했으나 사실 '윤빛가람 영입'은 몇 개월 전부터 박경훈 제주 감독의 머릿속에 있었다. 지난해 말에도 그를 만나 세 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다.
문제는 이적료였다. 넉넉지 않은 팀 재정에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머뭇거리던 사이 눈여겨보던 김동섭이 성남행을 택했고, 크로아티아 대표팀 공격수 영입마저 틀어졌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쉬움을 접고 윤빛가람 대신 박기동을 데려와 시즌 준비에 나섰다.
반전은 시즌 개막 직전 일어났다. 외국인 선수 산토스가 느닷없이 중국으로 이적한 것. 공격의 핵심자원을 잃은 대신 거액의 이적료를 챙겼다. 때마침 윤빛가람은 성남 2군으로 추락했다. 곧바로 협상에 나선 끝에 어렵사리 그를 데려올 수 있었다.
공들인 이적인 만큼 선수 활용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분명하다. 특히 박 감독은 윤빛가람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다. 과거 U-17(17세 이하) 대표팀 시절에도 3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2010년 드래프트 당시에도 앞 순위 경남FC의 지명만 없었다면선택은 윤빛가람이었다. 선수의 장단점을 꿰뚫어 볼 뿐 아니라, 축구 내·외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
박 감독은 윤빛가람이 성남에서 부진했던 이유부터 진단했다. 그는 "(윤빛)가람이는 성남 시절 공격수 바로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라며 "그러다보니 전술상 수비수를 등진 상태에서 공을 받는 장면이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윤빛가람은 전방에서의 활발한 침투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공수를 오가는데 익숙한 선수. U-17 대표팀이나 경남 시절에도 그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박 감독은 "수비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가람이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라며 "하지만 공수 연결 고리로서의 능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히려 동료 간 유기적 움직임으로 미드필드 전술 다양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며 "특히 우리 팀은 미드필드 플레이를 강조하는 데 윤빛가람은 그런 부분을 잘 소화할 능력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 감독은 윤빛가람을 팀의 핵심 선수로 활용할 계획이다. 제주는 기존에 송진형-권순형-오승범이 정삼각형 형태로 중원에 배치됐다. 여기에 윤빛가람이 더해진다면 수시로 정삼각형 혹은 역삼각형의 미드필드 운용이 가능해진다. 윤빛가람이 올라서면 송진형이 뒤를 받쳐주거나 혹은 그 반대가 되는 식이다.
송진형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박 감독은 "진형이는 개인 전술과 득점력을 갖춘 반면, 가람이는 볼 배급과 템포 조절에 능한 선수"라며 "각각의 장점에 따라 역할이 분배된다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2010년 준우승 당시 주역인 구자철-박현범 못잖은 듀오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날카로운 킬패스 능력은 팀 공격력을 한층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 감독은 "중원에서 볼을 소유하다 순간적으로 최전방 혹은 측면에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선수가 윤빛가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남에서도 가람이가 볼을 잡으면 루시오가 순간적으로 뛰어 들어가고, 여지없이 공이 연결됐다"라며 "우리 팀에서도 강수일, 이현진, 마라냥 등의 공격력을 배가시켜줄 요소"라고 힘주어 말했다.
약점으로 지적받는 '멘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해란 얘기다. 박 감독은 "캐릭터가 독특할 뿐,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가람이는 보통 아이들과 달리 어른스러웠다"라며 "축구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도 강했다"라고 설명했다.
주변 시선도 긍정적이다. 팀 동료 홍정호는 "가람이의 연습경기를 보면서 저렇게 좋은 선수가 왜 부진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정해성 SPOTV+ 해설위원 역시 "박 감독과 윤빛가람은 한 마디로 궁합이 맞는 사이"라며 윤빛가람의 재기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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