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여건에 미확약부 여신약정 부당 적용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중소기업 대출에 '미확약부 여신약정'을 적용한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과 씨티은행이 잇달아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게 됐다.
미확약부 대출약정은 대출한도를 소진하지 않은 약정금액을 은행이 임의로 회수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현행 은행법에 위반된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자산건전성 평가시 위험가중치 산출에 필요한 '신용환산율'을 낮추거나 없앨 수 있어 유리하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양대 외국계 은행인 씨티와 SC은행은 중소기업대출 6000여 건에 이 같은 미확약부 대출약정을 부당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빼앗긴 대출한도는 금감원 검사에서 파악된 것만 100조원에 육박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중소기업대출에 '미확약부 여신약정'을 적용한 한국씨티은행에 대해 기관경고를, 하영구 은행장에는 주의적 경고를 각각 결정했다.
금감원은 이보다 앞선 지난 22일에도 같은 혐의로 SC은행과 리처드 힐 은행장에게 각각 기관경고와 주의를 의결한 바 있다.
금감원이 하 행장에게 한 단계 높은 주의적 경고를 내린 이유는 씨티은행의 미확약부 대출약정 운용규모가 SC은행의 10배가 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 대출약관 마지막에 특약 형태의 미확약부 약정을 끼워넣는 수법으로 중소기업에 사실상 약정 체결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약정 체결을 통해 한국씨티와 SC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각각 4.3%와 4.8% 감소했다. 중기 대출을 줄이는 대신 이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나 대기업 회사채 투자를 확대했다.
금융당국은 외국계 은행의 대출 관행과 관련,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게 유지해 결산 때 고배당을 추진하는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위험가중치를 낮출 경우 자기자본비율을 상대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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