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국가로부터 어떠한 고지서도 받지 않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바로 '불. 가. 능'. 우리는 단 하루도 물 전기 도시가스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지금 당장 빠르게 소모 중인 휴대폰 배터리부터 충전해야 할 판이니까.
하지만 이 물음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인물이 있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감독 임순례)의 최해갑(김윤석)이다. 그는 TV 수신료를 내기 싫어 TV를 던져버리고, 국민 연금은 쿨하게 거절했다. 공무원과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끔찍이 싫어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얼핏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를 떠올리기 쉽다.
최해갑은 그러나 그런 아나키스트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또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비현실적 캐릭터인 것은 분명한데, 그가 내뱉는 말들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또 공감이 간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해가 가지 않던 최해갑의 행동들에 차츰 박수를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남쪽으로 튀어'에는 최해갑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눈여겨봐야 할 캐릭터는 바로 배우 오연수가 연기한 최해갑의 아내 안봉희다. 안봉희는 한 때 '안다르크'로 불릴 만큼 열혈 운동권이었다. 도데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는 최해갑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인물이다. 여기에 순박한 섬 청년 홍만덕(김성균)도 무서운 면모(?)를 지니고 있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 밖에도 최해갑의 세 남매 민주(한예리) 나라(백승환) 나래(박사랑) 역시 아버지의 든든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또 다양한 조연 배우들이 등장해 작품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남쪽으로 튀어'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공존하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 작품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많은 부분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관객들 개개인이 느끼는 점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굉장히 무겁다. 과연 대중들은 그러한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임순례 감독이 선택한 것이 '웃음'이다. 유쾌함 속에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그런데 그 웃음이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최해갑이 가출한 아들과 대화를 나눌 때, 과감하게 국민 연급을 안 내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경찰서에 끌려가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일 때 김윤석 특유의 말투가 엉뚱한 상황에 더해져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피식' 거리는 씁쓸한 웃음일 뿐, 빵 터지는 통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중요한 장치가 됐어야 할 '코믹' 요소가 부각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남쪽으로 튀어'는 15세 관람가로, 다음달 7일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다.
장영준 기자 sta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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