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일자리 전쟁… 일자리 양과 질 높여라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1. 지난 2010년 33년간 근무한 해운회사를 퇴직한 이영실(남ㆍ57세)씨는 올해 초 한 중소기업 관리직으로 다시 일자리를 얻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해 소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전 직장의 70% 수준. 하지만 이 마저도 감지덕지다. 이씨는 계약직 신분이라 내년에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다시 이력서를 들고 여러 회사를 전전해야한다.
#2. 서울의 명문 사립대학을 지난해 졸업한 이 모씨(여ㆍ27세)는 올해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50장에 가까운 이력서를 썼다. 그 중 최종면접까지 가본 곳은 단 한 곳. 명문대에 입학하면서 부모님이 가졌던 기대는 졸업 후 1년 간 백수로 살면서 산산히 부서졌다. 졸업 후에도 대학가 근처에 방을 얻어 취업준비를 했지만 오르는 방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얼마 전부터는 고향에 내려가 집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안쓰럽게 생각하는 부모님의 시선과 죄송한 마음 때문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퇴직 후 다시 취업하는 아버지와 졸업 후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딸. 우리사회에 드러난 고용시장의 한 단면이다.
세대별 일자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대 청년층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50대 중장년층은 눈높이를 낮춰 재취업을 하고 있다. 서비스 등 일부 업종에선 50대 인력이 20대 인력을 대체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수치로 확인해보자. 올해 고용시장에선 취업자 수 증가세가 뚜렷했다. 11월말 현재 취업자수는 전년 대비 45만1000명 늘었다. 지난해 연간의 취업자 증가폭(41만5000명)을 이미 넘어섰다. 그러나 연령별로 보면 50대 이상 중년층 일자리에 집중됐다. 50대 취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 증가분의 약 60%를 차지한다.
반면 20대는 여전히 어렵다. 4월엔 전년 대비 취업자 중가수가 '0'을 기록하더니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 간 내리 취업자가 줄었다. 감소폭도 5월 4만명에서 11월 7만명으로 확대되고 있다. 11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7만9000명 줄었다. 고용률도 58%에서 정체되고 있다. 고용률 70%를 웃도는 50대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가히 일자리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50대와 경쟁에서 탈락한 20대가 '나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형국이다.
전남대학교 이찬영 경제학부 교수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20대와 50대 고용률을 비교한 결과 50대 고용률이 1%포인트 증가할 때 20대 고용률은 0.5%포인트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50대가 퇴직을 하지 않은 만큼 20대의 신규 채용이 줄었다는 의미다. 그는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에 부분적으로 경합이 발생하고 있다"며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종료되는 2018년까지는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자리 전쟁은 20대와 5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가계금융ㆍ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6명 중 한 명이 연간 1000만원을 벌지 못하는 빈곤층이다. 특히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와 65세 이상 노인계층은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다. 양극화도 여전해 소득 상위 20%는 하위 20%의 13배를 벌고, 교육비는 28배나 더 썼다.
유럽에서는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해 청년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런 사회현상들이 모두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부의 양극화도 따지고 보면 일자리 양극화다. 적어도 일할 자리가 있다면 굶어죽는 극단적인 빈곤은 발생하지 않는다. 빈곤, 범죄 등의 문제도 결국 일자리 부족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자리 전쟁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고민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자리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다면 해결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워크셰어링'을 하나의 대안으로 꼽는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도 고려할 만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시점까지는 워크셰어링과 임금피크제를 통해 근로자의 정년을 보장하고 줄어든 만큼 청년층의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찬영 교수는 "업종과 실제 현장에 맞게 맞춤형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며 "현장의 케이스별로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임금 시스템을 개편하고 교대제나 임금피크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 근로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긴 노동시간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며 "파트타임제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생산성도 높아지고 장시간 근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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