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재범 기자]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방송가와 극장가의 흥행 코드를 정리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첫사랑’이다. 아련함과 기억 속 추억의 끝자락을 건드린 감성의 파도가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대중들의 가슴을 적셨다.
올 한 해 안방극장 멜로 열풍의 신호탄은 ‘해를 품은 달’이었다. 평균 시청률 30%를 넘나들었고, 최고 42%까지 치솟으며 올해 초 방송가의 메가 히트작으로 기록됐다. 사극이란 장르적 한계성과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내용임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중장년층의 전유물인 사극의 틀을 깨고 20, 30대 시청자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 들였다. 그 원동력은 바로 명품 아역 배우들의 힘이다.
여진구 김소현 김유정 이민호 등은 이 작품으로 ‘아역’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뛰어난 감성 연기를 선보였다. 나이답지 않게 사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쏟아낸 이들 배우의 힘은 올해를 장식하는 화제작으로 이어지며 그 여운의 끝을 놓지 않고 있다. 바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에서다.
시작부터 ‘첫사랑’이란 코드를 들고 나온 ‘보고싶다’는 다소 진부한 내용으로 극 초반 시선몰이에 힘이 부치는 듯 했다. 특히 제작단계에서 불거진 캐스팅 논란 등이 겹치며 첫 시작부터 악재를 안고 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깨끗이 지운 것이 바로 ‘해품달’의 아역 커플인 여진구와 김소현의 힘이었다.
1회부터 5회까지 이어진 두 아역 배우의 힘은 대단했다. 주인공 정우역의 여진구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갔다. 흡사 감정의 바닥부터 가장 정점인 꼭대기의 한 점까지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듯 보였다. 특히 자신이 호감을 보인 수연(김소현 분)에 대한 낯선 감정부터 연민의 조각을 맞추는 듯한 세밀함까지 감정의 디테일을 여지없이 살려냈다.
김소현 역시 불행한 환경 속에서 자란 어두운 캐릭터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해 내며 매회 끝없는 눈물 연기로 ‘명품 아역’의 그것을 보여줬다.
두 아역 배우가 만들어 낸 ‘보고싶다’의 여운은 박유천-윤은혜 성인 배우들로 넘어가면서도 이어졌다. 특히 박유천-윤은혜 커플이 주고받은 섬세한 대사의 만듦새는 여성팬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웃어? 난 화나 죽겠는데.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딱 오늘만 기다린다. 오늘만. 나 이러다 정말 돌겠다.”(박유천) “하늘이 빙빙 돈다. 내 머리가 미쳤나봐. 네가 옆에 있는데도 네가 생각 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눈이 시려서 네가 생각나.”(윤은혜) “수연이 집 앞에 가로등이 있는데 거기서 집까지 280걸음. 14년 동안 멀어졌다면 돌아오는 데 몇 걸음이 될까?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버린 게 아니라 아직 오고 있는 거야.”(박유천) 등 감정의 실체를 뒤흔드는 대사들이 매회 쏟아지면서 감성 스토리와 어우러져 수목극 시청률 왕좌의 자리를 지켜나갔다.
단순히 ‘보고싶다’가 멜로 드라마의 공식만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캐릭터들 간의 뒤엉킨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매회 계속되면서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멜로 장르에 일종의 긴장감을 부여하며 재미를 가져가는 영리함을 보이고 있다.
극장가로 눈을 돌려보자. 단연코 최대 화제작은 ‘건축학개론’이다. 걸그룹 미쓰에이 멤버 수지를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만든 이 영화는 30대 이후 결혼을 앞둔 남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20대의 설렘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남성 관객이라면 극중 남자 주인공인 이제훈-엄태웅, 여자관객은 수지-한가인이 마치 자신인 마냥 감정 이입이 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멜로영화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한 ‘건축학개론’을 가뿐히 뛰어 넘어 700만 관객을 돌파한 ‘늑대소년’은 다소 이질적인 ‘첫사랑’ 코드를 그린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존재인 늑대소년(송중기)과 세상에 마음을 닫아버린 한 소녀(박보영)의 러브스토리는, 올 한 해 드라마와 영화를 관통한 ‘첫사랑’ 코드와 맞물리며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특히 ‘판타지’란 독특한 장르를 결합해 만들어 낸 새로운 코드의 스토리에 10~20대 관객이 큰 호응을 보냈다.
‘첫 사랑’으로 이어진 2012년 멜로 열풍은 분명 안방극장과 극장가에 풍성한 웃음꽃을 안겨줬다. 이 같은 분위기가 2013년을 얼마 안남은 지금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흥행 코드가 또 다시 안방극장과 극장가를 장식할 것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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