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남북경협 사업에 참여하면서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해 탈북자모임 단체의 대표를 독총으로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탈북자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독침으로 살해하려고 한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등)로 기소된 안 모(55)씨에 대해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안 씨는 지난 1995년 8월 북한을 탈출해 같은 해 10월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남북경협'의 무역담당 이사로 재직한 안 씨는 사업을 이유로 몽골로 출국한 후 그곳에서 북한 상사원들과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안 씨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북한 상사원들은 안 씨를 북한 공작원에게 소개시켰고, 공작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안 씨의 가족을 언급하며 국내 보수단체 대표를 암살하려는 자신들의 공작에 안 씨가 함께 하도록 회유했다.
탈북자이면서 남북경협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안 씨는 국정원 직원들과 정보를 교환해 왔고, 안 씨가 받은 북한 공작원의 지령 내용을 알려주자 국정원에서는 더 이상 몽골에 가지 말 것을 안 씨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북한 인맥을 통한 사업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안 씨는 다시 몽골로 출국했다. 그곳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독총 등을 가지고 국내 들어왔다. 안 씨는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자금도 받아 박 대표를 살인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그러나 이를 먼저 눈치 챈 국정원 직원에게 붙잡혀 암살기도는 실패했고, 안 씨는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안 씨는 원심 재판에서 "북측의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뜻밖에 독침을 건네받았고,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돼 북측을 속이기 위해 일종의 '쇼'를 한 것이고 국정원에도 간접적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며 "지령을 실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모두 안 씨가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은 "안 씨가 1995년 탈북 당시 가족들이 이미 통제구역에 들어가게 됐다"며 "안 씨가 '쇼'를 하더라도 북한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새삼스럽게 더 큰 불이익을 입게 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애초에 국정원이 안 씨가 '쇼'를 제안하자 강력하게 거부했다"며 "박 대표의 연락처를 알아보고 불러낼 구체적인 구실을 만들어 제안하는 등 구체적으로 사건을 계획했다"고 판단해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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