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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25년]"모스크바 탱크 들어온 날도 러와 의리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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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화는 그들에게 감동 줘야 한다...李 회장의 결단
현지서 번이익은 현지 재투자
톨스토이 문학상 아낌없는 지원
미국선 유방암재단 통큰 기부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1998년 8월17일 러시아 정부는 루블화에 대한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장장 7년에 걸친 러시아의 자본주의 실험이 실패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전역은 1997년부터 경제위기를 겪고 같은 해 11월 우리나라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암흑의 시기였다.


아시아 금융 위기를 피해 떠오르는 신흥국 러시아에 집중 투자해온 삼성그룹도 위기에 직면했다. 지불유예로 인한 자금유통 불가와 자본주의 실패로 인한 대중의 반기로 모스크바 시내는 탱크가 점령하고 기업들은 러시아를 떠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1등 가전 브랜드였던 소니도 2명의 주재원만 남겨 놓고 현지 법인을 철수했다. 삼성그룹과 이 회장에게도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철수냐, 남을 것이냐.


수일간의 고민이 끝난 뒤 이 회장은 경영진들을 불러 모았다. 이미 철수해야 한다는 수많은 의견을 받은터였다. 침통한 표정의 경영진들을 둘러본 이건희 회장이 입을 열었다.

“삼성은 러시아에서 철수하지 않습니다. 기회로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합시다.”


당시 러시아에 투자했던 외국 기업 중 잔류를 선택한 회사는 삼성이 유일했다. 모라토리엄의 여파는 러시아의 자존심까지 흔들어 놓았다. '볼쇼이 발레단'은 돈이 없어서 문을 닫기 일보직전이었고 미국과 유일하게 자존심 대결을 벌이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도 해산 위기였다.

[이건희 회장 25년]"모스크바 탱크 들어온 날도 러와 의리 지켰다" 삼성전자의 러시아 깔루가 공장. 연간 300만대의 디지털TV가 생산되는 이곳은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성전자의 러시아, CIS 지역 1위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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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정신으로 불리던 '톨스토이 문학상'도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업 삼성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는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한데 힘입어 오일 머니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며 브라질, 인도, 중국과 함께 4대 신흥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떠났던 기업들도 다시 돌아왔다. 이들 기업들은 볼쇼이 발레단, 톨스토이 문학상측과 접촉해 삼성이 후원하던 돈의 몇 배를 주겠다며 나섰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당시 볼쇼이 발레단 단장은 이들 기업들에게 “우리에겐 몇십 배의 후원보다 가장 어려운 시기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준 삼성과 형제애를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삼성이 러시아 국민들에게 녹아들어 국민브랜드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이 회장의 이 같은 글로벌 현지화 전략은 미국, 유럽, 중국, 동남아 등 전 세계로 확대됐다. 히트 제품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번 이익은 최대한 현지에서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도 이때 정착됐다.


미국서 펼친 현지화 전략은 기부였다. 삼성전자는 1997년 미국 휴대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수잔 지코만 유방암 재단'에 매년 40만 달러를 기부하고 유방암을 극복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페기 프레밍, 유방암에 걸린 부인의 간병을 위해 은퇴한 유명 풋볼 선수 등을 모델로 한 광고를 내보내며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줬다.


중국시장에서의 현지화 전략도 눈에 띈다. 중국에 진출한 삼성 계열사는 법인장을 비롯해 말단 주재원까지 모두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중국의 문화, 정치, 경제, 상관례 등에 대한 별도의 교육도 받는다. 일본 기업들 대다수가 중국어를 못해 현재 채용한 직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이 회장이 애착을 갖고 추진하는 '지역전문가' 제도도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이 회장은 1993년 지역전문가 제도 도입을 지시했다. 비서실에서 제시한 초안은 10년간 매년 50명씩 해외 파견이었다.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은 “이것 가지고 안된다. 매년 500명씩은 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일부 경영진이 “1년에 500명씩 외부로 나가면 업무 공백도 우려되고 중국, 러시아 같은 경우는 한 사람당 최대 5만 달러 이상을 별도 지원해야 하는데 이렇게 큰 돈을 들여 키워놓은 인재가 회사를 떠날 경우 손해가 크다”며 반대에 나섰다.


이 문제에 대한 이 회장의 답은 명쾌했다. 이 회장은 “어차피 (삼성을) 떠나도 한국에 있을텐데 국가에 기여하면 된다. 그런걸 두려워 하면 아무도 인재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삼성을 대표하는 글로벌 인력 양성 시스템인 지역전문가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 결과는 삼성전자가 유수의 전자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스마트폰 등 총 11개 품목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는 기반이 됐다. 계열사까지 더하면 20여개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가치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 브랜드 100위 중 20위권에 처음으로 진입했던 삼성은 지난 2009년 19위, 2011년 17위를 기록한 뒤 지난해 9위권으로 진입했다. 올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는 다시 6위로 올라섰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2009년 통합 브랜드 1위를 기록한 뒤 지금까지 매년 1, 2위를 다투며 국민 브랜드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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