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파일럿 토 KBS2 밤 11시 25분
휴대폰 압수 10분 전, 새신랑 정태호와 품절남 김준현은 각자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통화를 하고, 사업가 김준호는 필사적으로 사업 연락처를 옮겨 적는다. 결혼하고픈 총각 허경환도 번호를 적기 바쁘다. <인간의 조건>은 특별한 게임이나 이벤트를 더해 웃음을 만드는 ‘덧셈의 예능’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문명의 이기를 소거하고 그 변화를 지켜보는 ‘뺄셈의 예능’이다. 제작진은 ‘휴대폰, TV, 인터넷 없는 일주일’ 실험에 참여한 개그맨 6명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담담한 톤과 차분한 템포로 담아낸다. 다들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박고 있는 <개그콘서트> 회의실 풍경, 매일 오가는 길목에 있었는데도 몰랐던 공중전화의 존재, 부모님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한 무심했던 자신처럼, 늘 보던 풍경의 이면을 새롭게 발견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특별한 치장 없이도 흥미롭다.
프로듀서를 맡은 나영석 PD의 전작인 <해피선데이> ‘1박 2일’ 역시 평범한 여행에서 밥을 먹고 차를 타며 숙소에서 자는 당연한 일상을 소거해 박진감 넘치는 생존투쟁으로 바꾸는 뺄셈의 예능이었다. 그나마 여행이란 요소도 없이 1주일을 우직하게 담아내는 <인간의 조건>은 한결 더 리얼하고 내밀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빈 집에 혼자 남은 양상국이 그간 쓸 일이 없던 ‘외로움’과 ‘기다림’의 감각을 회복하는 과정, 동전이 떨어지는 걸 초조하게 지켜보며 수화기에 매달리던 공중전화의 체험, 서로 연락하기 힘들 것을 안타까워하는 박성호 부부의 애틋함은 그것이 특별할 것 없는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더 선명하게 전해져 온다. 연출을 맡은 신미진 PD는 때론 감각적인 편집으로, 때론 관조하는 시선으로 이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전달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은 어떤지 되돌아 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극적인 조미료 없이도 다음 화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한 달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영악한 예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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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승한(자유기고가) 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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