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한지 꼭 25주년이 지났다. 취임일은 12월 1일 이지만 선대 회장이 19일 별세한 뒤 이 회장이 공식 업무에 나선 날은 20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현재 삼성그룹의 매출은 383조원을 넘겨 1987년 9조9000억원 대비 39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25년전 1조원에서 303조2000억원으로 303배 가까이 커졌다.
이 같은 삼성그룹의 놀라운 성장은 미래를 통과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지난 1974년 동양방송 이사를 맡고 있던 이 회장은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동의를 얻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재까지 털어 파산 위기에 직면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뒤 삼성전자에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기술도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자본금까지 모두 써버리며 삼성그룹 내에서도 미운오리새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말만 반도체였지 TV에 들어가는 간단한 회로조차 만들기 버거웠고 D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기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과 이 선대 회장은 1983년 2월 오랜 고심 끝에 동경에서 최첨단 D램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사업 진출을 결심했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보니 삼성그룹으로선 미래를 건 도박에 가까웠다. 삼성그룹 경영진도 모두 반대했지만 두 부자는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밀어붙였다.
영원히 전자왕국 일본의 뒤만 보며 살아갈 것이냐, 자칫하면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지만 도전해 볼 것이냐는 결정적인 순간에 오너로서 결단력을 내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일본, 유럽 등 유수의 반도체 업체도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64K D램 개발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당시 국내 반도체 사업은 일본에서 반제품을 들여다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비웃었지만 이 회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매주 일본으로 건너가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 반도체 개발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배우고 이를 기술진에게 전달했다.
이 회장은 당시를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기 때문에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에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야 했다"면서 "조금이라도 도움 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고 이것이 삼성전자가 관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1983년 12월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격차가 났던 반도체 기술은 4년으로 좁혀졌다.
선진국들과 4년까지 좁혀졌던 기술 격차는 매년 조금씩 줄어들었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3~5년의 격차로 앞서 있고 시스템 반도체 시장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인텔을 맹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삼성전자는 외연을 디스플레이, TV, 휴대폰 등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수출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1987년 삼성그룹의 전체 수출은 63억 달러에 불과했다. 25년이 지난 현재는 1567억 달러에 달한다. 25배가 늘었다. 한국 전체 수출 중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1987년 13.3%에서 현재 28.2%까지 증가했다.
세계 10대 브랜드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난 1987년에는 글로벌 기업 순위나 브랜드 순위에서 찾아볼 수도 없었지만 2004년 100대 브랜드 중 21위로 이름을 올린 뒤 지난 2011년 17위를 거쳐 현재는 9위까지 상승했다. 삼성그룹의 브랜드 가치는 액수로 따지자면 328억9000만 달러에 달한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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