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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하이얼에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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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하이얼에서 배우기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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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가전업체는 하이얼이라는 중국 기업입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전통적 가전기기,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제품은 꽤 오래 전부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 제품을 만들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달성하고 있는 점입니다(영업이익률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중간쯤, 자본이익률 기준으로는 삼성전자보다 높습니다).


하이얼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데는 경쟁사가 따라오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와인셀러가 대표적이지요. 일부 시각처럼 하이얼의 경쟁력을 싼 노동력이나 공정 효율성만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다른 가전업체들도 대부분 중국에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많은 분석가들은 하이얼이 보유한 혁신 능력에 주목합니다. 제품과 서비스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혁신의 원동력은 하이얼이 만들어낸 매우 특이한 조직운영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얼은 단일한 조직이라기보다 4000여개에 이르는 수많은 소기업의 연합체라고 보는 편이 옳을 수 있습니다. 직원들은 원하면 누구나 사내 기업을 창업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제품을 생산하거나 배송이나 물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재무 부서도 재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기업 형태로 돼 있다고 합니다. 소기업은 다른 소기업과 계약을 통해 사업을 영위합니다. 이들 소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은 단 한 가지, 손익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하이얼 직원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고 있으며, 고객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내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면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응답이 이뤄지고, 서비스 요원은 3시간 이내에 중국 어디라도 도착한다고 합니다.


하이얼의 사례는 기업의 존재 목적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거래비용 이론에 따르면 기업이란 외부 시장거래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그래서 기업조직은 위계와 통제를 원리로 운영됩니다. 외부 시장보다 더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요. 따라서 하이얼처럼 기업 운영체계를 마치 시장거래와 비슷하게 만들면 우리가 원래 기업을 조직화하면서 원했던 효율성을 잃을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렇게 기업 내부조직을 느슨한 형태의 연결체로 재구성하는 시도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닝스타나 고어와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인 예로 거론됩니다.


이런 시도는 전통적인 조직운영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반영합니다. 2010년 타워스 왓슨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직장인의 약 20%만이 자신의 업무에 몰입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꼴찌인 약 6%의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직장인 대부분은 그저 '먹고 살려고' 회사에 다닌다는 뜻이지요. 왜 직장은 우리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는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관리'라고 부르는 수많은 통제 장치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좌절시키고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느슨한 조직과 자율적 관리를 시도하는 기업들은 통제와 관리 장치를 헐겁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열정과 몰입을 꺼내보려고 합니다. 일정한 비효율성과 혼란을 견뎌내더라도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열정이 발휘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시도는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회사가 '돈 벌러 가는 곳'이 아니라 '꿈을 펼치는 곳'이 되도록 하겠다는 용감한 시도들은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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