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아버지 밑에서 잘난 아들이 나오기 쉬울까, 잘난 딸이 나오기 쉬울까?”
밑도 끝도 없는 의문이라 그런지, 속담이나 격언을 살펴봐도 찬반이 엇갈린다. '왕대밭에서 왕대 난다'며 혈연에 의한 우성 유전자 세습에 한 표를 던지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 나무 밑에서는 크게 자랄 수 없는 법’이라며 부자관계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승자독식의 폐해’를 꼬집는 격언도 있다.
그런데 ‘우발적(emergent) 전략 이론’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캐나다 맥길대 민츠버그 교수가 이에 대해 “강한 아버지 밑에서 약한 아들이 나오기 쉽다”는 결론을 내놓으며, “한국 대기업들도 사위에게 기업을 물려준 봄바디어(Bombardier)나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를 벤치마킹 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을 제기해 눈길을 끈다.
그가 제시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이렇다. 40년 동안 가족기업을 관찰해보니, 전형적인 창업자의 유형은 강한 어머니와 약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약한 아버지의 자리를 메워 강인한 성격으로 자라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창업 1세가 아들을 낳는다면 어떻게 될까?
민츠버그의 주장에 따르면, 강한 권위를 가진 아버지에 치여서 약한 2세로 성장하기 쉽고, 그에게서 난 재벌 3세는 더더욱 약해진다고 한다. 아울러 그는 이런 분석과 함께 “창업자는 강한 기업을 만들고, 그의 2세는 기업을 현상 유지하며, 3세는 대체로 기업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내 오랜 연구의 결론”이라며 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잘난 아버지 밑에서 나온 딸은 어떻게 될까? 민츠버그 교수의 관찰에 따르면, 딸은 무의식중에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오히려 사위나 조카가 창업자를 더 빼닮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들이 후계자로서 아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냈다는 결론이야 안 봐도 훤하다.
일면 타당한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위 경영시대’를 이끌고 있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나 정태영 현대카드 회장, 신성재 하이스코 사장, 박장석 SKC사장 등을 보면 민츠버그 교수의 이론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재계의 혼맥이 딸들의 자유연애 시스템에 의한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정략결혼에 가까운 게 현실이라면? 알다시피 재벌의 사위는 그 역시 정재계의 황태자 출신이거나, 그에 못지않은 출중한 실력을 입증한 경우 창업 1세에 의해 발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구심이 나는 부분은 또 있다. 강한 창업주 아버지에게 치여 2세가 유약한 성격을 갖기 쉽다는 것은 그런대로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3세로 넘어가면 더 약해진다고? 전형적인 창업자 유형이 강한 어머니와 약한 아버지 사이에서 나온다는 자신의 주장은 다 어디다 팽개치고? 그 이론을 받아들이자면, 도리어 재벌 3세 시대에 이르러 기업에 새롭게 도약할 전기가 마련된다는 가설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가족기업을 40년 간 관찰했다는 민츠버그 교수만큼은 아니지만, 재야에서 암암리(?)에 관찰과 궁리를 이어온 내가 보기에도, 잘난 아버지 밑에 잘난 아들이 나올 확률보다는 잘난 딸이 나올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왜냐면 아들은 강한 아버지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취급돼 일치감치 비교대상이 되는 수모를 감수해야 하지만, 딸은 ‘무의식의 연인’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강한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씨’에 대한 집착만 아니라면, 대한민국의 많은 ‘딸 바보’ 창업주들이 딸에게 더 많은 권한을 물려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결론은? ‘아들세습’보다 ‘사위세습’을 해라? 그게 아니다. 이 땅의 창업주들은 딸의 안목을 믿고 연애결혼을 장려하라! -컨텐츠 총괄국장 구승준
이코노믹 리뷰 구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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