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벤처 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선 테마주 대주주들의 지분 고점 매각에 정문술 미래산업 고문도 동참했다. 벤처 1세대로서 후배 벤처기업가들의 멘토 역할을 했던 정 고문은 테마주로 부각되기 전보다 7배 가량 미래산업 주가가 이상급등한 날, 보유지분을 전량 처분했다. 이 소식에 반등을 모색하던 미래산업은 다시 하한가로 추락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 고문과 특수관계인인 양분순씨는 보유지분 2453만여주(7.95%)를 14일 장내에서 전량 매각했다. 권순도 대표와 권국정 사외이사도 각각 60만주와 14만주를 매각했다. 이에 따라 미래산업의 최대주주는 정 고문에서 우리사주조합(2.01%)으로 변경됐다.
정 고문이 주식을 판 14일은 미래산업이 2002년 이후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다음날이었다. 미래산업은 4월 중순까지만 해도 200원대에 머물렀다. 상반기 65억원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한 실적이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지지부진한 주가가 들썩이기 시작한 것은 정 전회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친분설이 퍼지면서다.
2000년대 초반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벤처대부로 인정받던 정 전회장과 백신 프로그램 ‘V3’로 인기를 끌던 안 원장은 지면을 통해 벤처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내용이 다시 부각되면서 미래산업은 안철수 테마주와 함께 간헐적으로 시세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8월23일부터는 테마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급등을 했다. 8월22일 466원 하던 주가가 지난 13일엔 장중 2245원까지 올랐다.
정 고문은 고점을 찍고 주가가 밀린 날 주식을 팔았다. 매각 단가는 주당 1785원이었다. 당시 미래산업은 하한가인 1765원으로 마감했는데 2200만주가 넘는 정 전회장 물량이 하한가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 고문의 지분매각에 대해 미래산업은 권순도 대표가 직접 “정 고문이 프리미엄 없이 현 경영진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정인에게 지분을 매각할 경우, 그동안 회사를 지켜온 임직원들에게 피해가 갈 것으로 판단해 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매각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설명에 대해 투자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대주주의 지분매각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벤처대부로 존경받던 정 고문이 자의가 아니더라도 테마에 편승해 차익을 실현한 것을 좋게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권 대표의 프리미엄이 없이 넘겼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평소 200~300원대에 머물던 주식을 1700원대에 판 것을 두고 그같은 설명을 하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 고문은 10년전 안철수 원장과 대담에서 벤처기업인이 사업이 아니라 주가를 신경쓰는 것은 사기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당시 머니게임을 하던 일부 빗나간 벤처인을 비판하는 말이었다. 물론 정 고문이 의도적으로 테마를 띄우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안철수 테마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정 고문은 이번 주식매각으로 400억원 이상을 현금화했다. 테마주로 부각되기 전 정 고문의 지분가치는 70억원 내외에 불과했었다.
증시 한 관계자는 “2007년 자원개발 테마를 등에 업고 보유주식을 고점에서 팔았던 정국교 전 에이치엔티 대표는 이듬해 비례대표로 민주당 국회의원까지 됐지만 고점매도에 발목이 잡혀 금뱃지를 달기도 전에 구속되는 비극을 맛봤다”며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정 고문의 지분매각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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