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못게라 검붉은 흙덩이 속에/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났는가//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과니/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이니/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닥쳐올 앞날은 더욱 모르노라/자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낮은 진구렁 개울 속에 선잠을 엮고/밤은 사람들이 버리는 더러운 쓰레기 속에/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 부르노니/오직 소리 없이 고요한 밤만이/나의 즐거운 세월이노라(......)
윤곤강의 '지렁이의 노래'
■ 지렁이가 사는 땅은 비옥함의 상징이었고, 비온 뒤 지렁이가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풍경은, 상쾌한 목가(牧歌)였다. 도시살이에서 지렁이는 보기 어려워졌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만 남았다. 아무리 순한 바보도 지나치게 대하면 반발한다는 뜻이다. '아무리'에 해당하는 대표로 쓰인 지렁이. 윤곤강은 그 천성을 살피고 살이를 엿본다. 그런데 요즘 지렁이가 뜨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데는 김병만보다 더 달인이다. 또 미국MIT의 김상배교수는 밟아도 끄떡없는 지렁이 로봇을 내놓았다. 몸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이동하는 이 로봇. 윤곤강교수는 청맹과니(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존재)라고 슬퍼했지만 이 지렁이는 그물눈으로 기막히게 정보수집을 해낸다지 않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