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리더십 키워드- 6. 율곡 이이 '만언봉사' 속 대쪽 충고
"나쁜 법은 백성을 힘들게 해...인재 뽑을 땐 출신 따지지 말라"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치에 있어서는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며 일에 있어서는 실공(實功)에 힘쓰는 것이 긴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난다해도 치적(治績)이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1573년(선조6년) 선조는 흰 무지개가 해를 뚫는 이변을 직접 목격했다. 이는 보통 전쟁의 조짐으로 해석되곤 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해는 지진이 일어나는 등 재이(災異)가 심했던 때다. 만인지상, 한 국가를 이끄는 리더는 이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선조는 조정의 신하부터 초야에 이르기까지 인재들에게 국난 극복을 위한 직언을 구했다. 1574년 우부승지로 재직하던 율곡 이이가 이 같은 구언교(求言敎)에 따라 올린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만언봉사'다. 만언은 일만자의 장문으로 구성된 상소, 봉사는 밀봉한 상소를 뜻한다. 이 안에는 평소 율곡의 철학 사상은 물론, 리더로서 임금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한 조언이 그대로 담겨있다.
율곡은 평소 통치자가 솔선수범함으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자율성을 제고하는 왕도정치를 지향했다. 율곡의 만언봉사도 마찬가지로 리더로서의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조선시대 정치사회풍습 중 잘못된 부분 7가지를 꼽고 "때에 맞춰 변법(變法)하는 것이 영원불멸의 도"라는 정자의 말을 인용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선조는 이 소를 보고 감동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실용을 강조한 율곡은 상소에서도 "실공이란 일을 하는데 성의가 있고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며 "자사는 '성실하지 못하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고 했고 맹자는 '성실이 감동시키지 못할 것은 없다'고 했다"고 전한다.
특히 상하(上下)의 신뢰, 관리들의 책임 소재와 책임감, 경연(經筵)의 운영, 인재 등용, 재해 대책, 백성의 복리 증진, 인심의 교화에 있어 실(實)이 없음을 지적하고, 수신(修身)의 요체로 분발ㆍ학문ㆍ공정, 어진 선비를 가까이 함, 안민(安民)의 요체로 개방적인 의견 수렴ㆍ공안(貢案)의 개혁ㆍ사치풍조 개혁ㆍ선상제도(選上制度)의 개선ㆍ군정(軍政) 개혁 등을 주장했다.
율곡은 "임금과 신하의 교제는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는 것과 같다. 밝은 임금과 훌륭한 신하가 만나 마음이 맞게 된 뒤에야 말이 시행되고 계책이 쓰여 여러 업적이 이뤄진다"고 군신 간 신뢰를 강조했다. 또한 "신하들이 새로운 정책을 건의해 시행하기는 커녕, 두려워하고 꺼리고만 있다"며 "대관은 위에서 유유자적하며 앞뒤 눈치보기에 힘쓰고 벼슬아치들은 자신이 관장할 일을 모르고 날을 보내고 달을 채우며 승진만 기다린다"고 본분을 다하지 않는 이들을 꼬집었다. 아울러 "지금 시신(侍臣)들은 학문이 부족하고 정성이 부족해 입시를 꺼리는 자가 있는가하면 경연직을 기피하기도 한다"며 나라를 이끄는 리더들이 배움에 충실하지 않음에 우려를 표했다.
율곡은 모든 정치가 백성을 위한 애민으로 부터 시작해 끝나야 함도 강조했다. 율곡은 "법령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고 그 피해는 백성에게 돌아간다. 정책을 마련해 폐단을 잡는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길"이라며 "임금과 신하들의 직책이 오로지 민생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 이가 몇이나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며 "병이 위중한 지경이라해도 신의라면 이를 고칠 수 있고,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도 명철한 임금이라면 부흥시킬 수 있다. 나라를 떨쳐 일으킬 방법을 생각할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율곡은 선조에게 "낡은 견해를 씻어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갖고 큰 뜻을 펼쳐라"며 "사심과 방심을 극복하고 의관은 바로 하라. 높은 곳을 바라보고, 노여움과 기쁨은 신중히 하고, 명령은 부드럽게 하라"고 강조했다. 인재 선택에 있어서도 "한 세상의 인물을 철저히 선발하되 출신성분을 따지지 마라"며 "널리 묻고 정밀히 골라 합당한 이를 얻을 것"을 조언했다. 이는 현대 경영이 지향하는 능력주의, 차별 없는 고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수백년전 율곡이 먼저 꿰뚫어본 셈이다. 신분에 따라 출세가 좌우되던 당시에 이 같은 주장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실제 율곡은 당시 사회의 천민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했다. 그는 심지어 죄를 지어 관청 소속의 종이 된 공천을 보고 '노예도 역시 인간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천민들을 동일한 인간으로 대하고 이들의 인간적인 고통에 관심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율곡은 만언봉사를 통해 선조에게 직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선조에게 "명철하심은 부족함이 없으나 지닌 덕은 넓지 못하고 선을 좋아하시나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며 "명을 내릴 때 말씀에 감정이 섞여있고 호불호가 일정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좋은 말을 올려도 이를 택하지 않으면 그 말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다"며 단점을 고칠 것을 당부했다.
(도움말:현대경제연구원)
조슬기나 기자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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