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자본시장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공개에 따른 신주 발행은 물론 기존 상장기업의 유상증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주가지수가 맥을 추지 못하는 주식시장 침체가 기업자금 조달시장으로서의 기능 저하로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올 상반기 상장기업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총 914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6조6581억원)의 14%에 불과했다. 2000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특히 기업공개(IPO)는 지난해 상반기 30개(1조6114억원)에서 올 상반기 9개(2479억원)로 줄었다.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세계거래소연맹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 대비 자금조달(IPO + 유상증자)규모 비중은 0.05%로 시가총액이 많은 주요 15개국 가운데 꼴찌다. 고속 성장하는 중국(1.8%)에 한참 못미칠뿐더러 경기침체가 20년 넘게 이어진 일본(0.16%)보다도 부실하다. 우리와 경쟁하는 아시아 신흥국 홍콩(0.7%)ㆍ대만(0.29%)ㆍ싱가포르(0.19%)와도 게임이 안 된다.
다급해진 기업들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자사주 처분'이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드는 상황이다. 기업의 자사주 처분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투자심리를 악화시킨다. 해당 기업들 또한 주가하락과 시간외매매에 따라 계획한대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기업 생태계는 창업과 성장에 이르는 길이 원활해야 이뤄진다. 갓 태어난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기반을 다진 뒤 주식시장에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월간 신설법인 수는 사상 최대 기록 행진인데 상장기업이 거의 끊긴 것은 기업 생태계가 시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식시장이 경제의 핏줄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가면 실물경제에 주름을 지운다. 금융당국은 주가조작이나 미공개 정보 유출 등 주식 불공정거래 행위를 뿌리뽑고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벤처ㆍ중소기업의 증시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지 살필 필요가 있다. 증권사들도 기존 상장사의 주식거래 수수료나 따먹는 안전빵 장사보다 괜찮은 기업들을 발굴해 상장시켜 과실을 나누는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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