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소연 기자]유럽 재정위기 이후 국내 주식시장이 자금 조달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면서 '돈줄' 마른 상장사들이 자사주 처분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투자심리 악화를 유도해 주가가 하락하고 이로 인해 기업들 역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3일 세계거래소연맹(WFE)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대비 기업 자금 조달 규모가 15개 주요 국가 중 10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시에서 이뤄진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규모는 5억4510만 달러(약 6181억원)로, 올해 6월말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1조246억2920만 달러)의 0.05%에 그친다.
이 같은 증시의 '돈 가뭄'은 지수가 안정을 찾은 지난 8월에도 이어졌다. 한달 간 코스피지수는 1880선에서 1900선으로 1.2% 올랐지만 유가증권시장 일 평균 거래대금은 여전히 4조원대에 머물러 지난 6,7월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돈 가뭄에 신음하는 상장사들이 잇달아 자사주 처분에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코스닥 인터넷 기업 처음앤씨는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23억3100만원 규모의 자사주 30만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로 처분한다고 밝혔다. 애초 회사 측은 지난 29일 종가에 5%를 할인한 7771원을 기준으로 잡아 23억원 규모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자사주 매각 공시 이후 주가가 이틀간 7% 하락하면서 회사가 조달할 수 있는 자금도 22억원으로 줄었다.
대형주들도 돈 가뭄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여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달 27일 자사주 11만2856주를 113억4202만원에 매각했다. 자사주 처분을 결정한 이튿날 주가가 5% 빠지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50억4155만원 규모의 자사주 61만1098주에 대한 장내 처분계획을 밝힌 하츠 역시 공시 이후 주가가 하루 만에 7.49% 급락했다.
상대적으로 현금흐름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 다우기술도 지난달 30일 신규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자사주 57만5153주를 72억4692만원에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이 외 네오퍼플, 도화엔지니어링, 세코닉스, 엔텔스, 금성테크 등이 투자 재원 확보나 자본 효율성 등을 이유로 자사주 처분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금성테크와 네오퍼플, 도화엔지니어링 등이 올해 상반기 모두 적자를 기록한 점 등을 들어 투자 주의를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신수종 사업자금 마련을 위한 경우도 있지만 그 외 급전이 필요한 상장사들은 재무구조 악화 때문에 자사주 처분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투자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소연 기자 nic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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