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은 정치활동을 위해 쓰도록 돼 있다. 실상은 딴판이다. 순수하게 정치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사적인 용도로 쓰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임기가 끝날 때면 '다 털어 쓰자'는 식의 몰아치기 지출 관행이 만연해 있다고 한다. 후원금을 제 주머니 속 돈쯤으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본지가 연재 중인 '금배지 쌈짓돈 막장 풍경' 시리즈는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잘 보여준다. 국회에 재입성을 못해 18대로 임기가 끝난 177명의 의원 중 88.1%인 156명이 후원금을 다 써버렸다. 후원금을 남긴 의원은 21명, 1300만원이다. 전체로 보면 1인당 7만3500원꼴이다. 17대 때 213만원의 3.5%에 불과하다. 바른 정치를 위해 썼다면 아까울 턱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원들이 고급 승용차 렌트, 명절 선물, 호텔 사우나 이용, 간담회 밥값 등 정치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사적인 일에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임기가 끝날 때쯤엔 돈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골적으로 펑펑 써버렸다.
이정희 전 의원은 지난 4월 유권자는 보지도 못한 의정보고서 제작비로 3100여만원을 썼다. 정하균 전 의원은 임기 만료 7일 전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사회재단에 남은 후원금 2200여만원을 모두 기부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임기 끝나기 5일 전에 홈페이지 제작비 등 명목으로 2200만원을 사용했다. 정책개발비 등의 명목으로 보좌진들에게 퇴직금을 수백만원씩 준 의원들도 수두룩했다.
후원금에 대한 의원 개개인의 잘못된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 아울러 투명하지 못한 씀씀이에 제동을 걸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탓도 크다. 우선 정치자금법상 '정치 활동'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후원금의 용도 및 관련 정보 공개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지가 않다. 후원금 내역을 48시간 내에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한 미국과 대비된다. 어겼을 경우 처벌 조항도 없다.
후원금은 정치를 잘하라고 준 '공금'이지 의원들의 주머니 돈이 아니다. 쌈짓돈쯤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관행은 뿌리뽑아야 한다. 후원금 지출의 투명성은 모금의 투명성 못지않다. 정치활동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혀 제대로 사용되는지 검증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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