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어? 아니, 지치는 게 뭐야?” 유준상이 자문자답하며 스스로 텐션을 높인다. 영화 <알투비:리턴투베이스>(이하 <알투비>), 뮤지컬 <잭 더 리퍼>,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까지 같은 기간에 세 개의 작품을 동시에 해낸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KBS <수요기획>에서는 그의 행복 점수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에너지의 원천을 살펴보기도 했을 만큼 무엇이든 즐겁게 하는 듯한 남자. 하지만 지난 5월 발간된 그의 책 <행복의 발명>은 유준상이 그 바쁘고 행복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에너지로 치환해 쓸 줄 아는 사람, 누군가와 비교하기보다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 <10 아시아>가 만나본 유준상은 지구별에 온 시간여행자 같았다.
유준상은 최근 개봉한 영화 <알투비>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 영화가 의미 있었던 지점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로 짚었다.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작품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까 거기에 많은 부분이 할애된 감이 있었죠. 이야기 구조를 다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기가 아직까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어느 작품보다 목숨을 걸었고, 애착도 가요. 처음 해보는 시도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작품을 했다는 건 제게 분명 의미가 있어요.”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뮤지컬 <잭 더 리퍼>까지, 많은 사랑을 받거나 색깔이 분명한 인물을 연기한 유준상에게 어쩌면 <알투비>의 이철희는 깨물면 가장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밋밋할 수 있고, 정말 평범할 수 있는 역할이었죠. 누가 봐도 그냥 그렇게 될 것 같은. 근데 전 그래서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정말 그런 사람으로 표현해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한 거죠. 그 자체로 표현 해보려 했어요. 그리고 진짜 군인처럼. FM대로.”
“딱 FM인 군인이 되어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제가 여전히 군인인줄 알았어요.” 유준상은 캐릭터 이철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군인들이 폼 잡으려고 뛰는 게 아니거든요. 멋져 보이는 선글라스도 원래는 눈부셔서 끼는 거죠. 멋있어 보이려 그렇게 걷는 게 아니라, 그 옷을 입으면 그렇게 걸을 수밖에 없어요. 군인들은 늘 반복훈련이에요. 정비사분들은 똑같은 비행기를 어제도 정비했지만 오늘 또 혹시 뭐 있나 없나 살펴봐요. 정말 지겨울 수도 있잖아요. 매일 똑같은걸 하는데. FM적인 모습의 이철희를 통해 그런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 그들은 그런 이야기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들 동우가 <알투비>를 보고 ‘비 삼촌은 메인 캐릭터고 아빠는 그냥 캐릭터’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포스터를 가리키며 비보다 아빠 얼굴이 더 크다고 해줬죠. 아이가 진심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정말 욱할 뻔 했어요. 애들은 또 거짓말 안하잖아요. 씁쓸하긴 했습니다. 비 삼촌을 더 멋있게 봐준 것 같아서. 하하하.” 아들과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유준상은 아들 동우를 문자 그대로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대했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하는 것들이 행복의 뿌리인 것처럼 설명했다. “<행복의 발명>에 있는 아들 이야기는 이렇게 안 써 놓으면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이죠. 지금은 아이의 상상력이 뿜어져 나오는 시기니까. 제 등의 부항 뜬 자국에 대고 손가락으로 전화번호 누르면서 “여보세요?” 하면 나는 돌아버려요. (웃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생각하면서, 막 적어 놓는 겁니다. 생각지도 않은 말이 아이에게서 나와요. 그런 것에 영감을 받고요. “잠자기 전에 뭐해?”하니까, “잠자리 다섯 마리 잡았어요”래요. 다시 물어봐도, “그래서 잠자리를 다섯 마리 잡았는데요” 하면서 자기얘기만 하고. (웃음) 그때그때 배우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유준상은 배우일지와 같은 일기장을 20년 넘게 꾸준히 썼다. 이를 엮어 낸 책이 <행복의 발명>이다. 그러나 책은 연기론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할 법한 보편적인 고민,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다. “10년 전 쯤 ‘그래, 이걸 어느 날 언젠가는 책으로 한번 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었어요. 물론 나 개인의 고민이지만, 사실 이런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건데 이걸 너무 어렵게 설명한 책들이 많더라고요. 그냥 내가 그냥 느낀 것들 혹은 고통스럽게 느낀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쓰면 이걸 읽는 사람들이 혹시나 비슷한 지점이 있을 때 위로받고, 생각도 해보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더 쓰게 됐어요. 힘들 때, 옛날 글들을 보며 ‘이때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했는데, 너 왜 이렇게 나약해 진거야’ 라고 자문하기도 해요. 또 어떤 날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을 썼단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계속 내 상태를 글로 써왔기 때문에 점점 더 좋아지는 거겠지 하면서 늘 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무리 합니다. (웃음)”
유준상은 인터뷰 내내 고민과 반복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썼다. “고민은 지겨우리만큼 반복되거든요. 책 준비하면서 일기장 정리를 하는데 5년 전에 일기장에 써놓은 문제점과, 작년에 쓴 문제점이 똑같은 거예요. ‘이거 뭐야 도대체, 5년 전에도 했었단 말인가?’ 하면서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분명 변화가 있었고, 지금의 고민은 이전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좋아진 것 같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좋았던 게 지금 안 좋아져있기도 합니다. 반복이죠. 야구선수들이 매일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하는데 결국 실전 경기에 들어가면 자신이 늘 잡아냈던 공을 너무 쉽게 놓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공을 잡기도 하죠. 그들도 매일 새로운 경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매일 똑같은 훈련을 해요. 우리도 똑같아요. 반복을 통해 더 발전시키고 발견해 나가는 거예요. 사실 우리야말로 항상 똑같은 것들을 하는 것 같아요. 역할만 다를 뿐이지, 역할을 위해서 하는 것들은 같으니까. 뮤지컬을 해야 하니까 매일 똑같은 발성 연습을 해야 하는 거고. 소리를 고민해야 하는 거고.”
많은 작업을 동시에 해내고, 스스로를 북돋아 반복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냐고 묻자, 유준상은 조금 높아진 톤으로 이야기했다. “저 사실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음악으로 에너지를 얻기도 해요.”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음악 목록에 있는 자신의 자작곡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휴대폰을 보여주며) “순서대로 ‘새벽비를 따라가다가’, ‘설레인다’, ‘아름다운 아름다운’이에요. 한 40곡 넘게 있어요. 연주곡으로 하려고 만든 곡도 있고. 50대에는 밴드도 하고 싶어요. 아직 멤버는 못 모았는데 정말 만들고 싶어요. 앨범도 내고 싶고. 시류 같은 거 안 따지고 ‘내 정서를 담아서 낸 앨범이 사랑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신이 느끼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같이 느끼고 싶어 앨범이 욕심난다던 유준상은 그저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 보단,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상에 품고 있는 호기심이다.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뮤지션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꿈만 꾸지 않고, 혼자서 조금씩 해오면서 앨범에 대한 소망을 품어 왔다. “사실 배우지만 뮤지션이라고 하면 또 뮤지션이기도 하지 않나요? 책을 냈으니 어쩌면 작가라고도 할 수 있고. (웃음) 그냥 전 순간순간 제가 저에게 이런 것들을 붙여줘요. 사진도 찍으니까 사진작가. 하하하. 어차피 안 되는 거지만, 그냥 그 순간에 그러면서 혼자 노는 거죠. 아이랑 축구를 하면 ‘난 지금 축구선수!’ 이렇게.” 유준상은 연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음악, 사진, 글쓰기 등을 해나가는 것에 “설렌다”고 표현했다. “원맨밴드 같은 것도 정말 하고 싶어요. 내가 지금 하는 것들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싶어요.”
하나씩 하나씩 품에서 꺼내듯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유준상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연기를 보여주는 건 이미 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배우로서 보여주는 거예요. 책이나 음악은 제가 유준상이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거라서 자꾸 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봐요. ‘나 이런 감성이 있고, 이런 것들을 느껴요. 어때요?’ 하는 거죠. 내 감성이 10대한테도, 20대한테도 어필할 수도 있고, 어르신께도 어필할 수 있고...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50대나 60대에 곡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아유, 할아버지가 만든 거네’ 하는 게 아니라. ‘이걸 만든 사람이 진짜 50대라고? 이 글을 쓴 사람이 정말 60대 후반이라고? 말도 안 돼.’ 이렇게 되고 싶어요. 재밌게 살아야지. 앞으로도 계속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사진제공. 나무액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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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경진 인턴기자 romm@
10 아시아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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