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마치 유행처럼 위기는 반복된다. 7월 소비자 물가가 3년 만에 처음 1%대로 떨어졌지만 밀과 콩, 옥수수의 국제 시세가 올랐다는 소식에 묻히는 분위기다.
일부는 소란스레 2008년의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곡물가격이 뛰어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 공포를 말하지만 진단은 제각각이다. 낙관적인 경기 판단을 질책받았던 정부는 긴장감을 높이는 반면 시장에선 "4년 전과 양상이 달라 애그플레이션을 말하긴 이르다"고 했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 물가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1.5% 올랐다. 한 달 전보다는 0.2% 떨어졌다. 1년 전과 비교한 물가 상승폭이 1%대로 떨어진 건 2009년 7월(1.6%) 이후 처음이다.
소비자 물가는 상반기 내내 하락했다. 비교 기준이 되는 지난해 물가가 4% 중후반까지 올라 워낙 높았던데다 경기부진으로 수요 압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3.4%였던 물가 상승률은 2월에 3.1%로 내려섰고 3월에는 2.6%로 가라앉았다. 6월 들어 2%대 초반(2.2%)까지 하락한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5%로 떨어지면서 3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기저효과에다 수요압력 하락으로 7월에는 근원물가(1.2%)와 생활물가(0.8%)의 상승폭도 낮았다. 다만 작황이 나빴던 일부 과일 가격이 뛰어 신선식품지수는 3.0% 올랐다.
관심사는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의 밀가루와 사료 가격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이나 콩, 옥수수 시세가 오르면 짧게는 4개월 길게는 반 년 뒤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이상 기온에 따른 주요 생산국의 작황부진으로 국제 곡물가는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 선물(12월 인도분)은 한 때 부셸당 8.1725달러에 거래됐다. 전 거래일보다 3% 급등한 사상 최고가다. 이날 거래는 부셸당 8.14달러에 마감됐지만 7월 한 달의 옥수수 가격 상승폭은 28%에 이른다. 한 달 상승폭으로는 지난 1998년 이후 14년 사이 최대치다.
곡물은 원자재이면서 간단한 가공만으로도 최종소비재가 돼 시장 파급력이 크고 빠르다. 밀가루 값이 오르면 과자와 빵, 외식비 가격이 상승한다. 사료용 곡물 가격 역시 축산물과 각종 가공식품 가격에 반영된다.
고환율·고유가·고물가에 시달렸던 2008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정부는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민생경제정책관은 "2008년과 달리 지금은 생산이 줄어 곡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면서 "경기는 나쁘지만 이번 상승세는 2008년에 비해 꽤 오랫동안 영향이 지속될 듯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5일에는 농림수산식품부도 서규용 장관 주재로 제분·사료업계 관계자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농림부는 가격이 급등하면 밀과 콩을 무관세로 들여오고 사료나 화학비료 구입 자금도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채현기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상기온으로 작황이 나쁜데다 주요국이 돈을 풀어 투기수요가 몰리다보니 곡물 시세만 오르고 있다"면서 "애그플레이션을 말하기엔 상승폭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채 연구원은 이어 "재고량이 부족하지 않고 다른 원자재 가격은 모두 떨어지는 추세여서 가을 파종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2008년과 같은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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