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으로 돌아온 작가 김애란 "비극적 상황을 비극으로 여기지 않고, 특유의 활기있는 익살로 공감 키워"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작가 김애란이 '비행운'을 안고 돌아왔다. '비행운'은 지난해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인생'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김애란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이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쓴 여덟 편의 단편을 묶었다. 4년치 작품을 모아놓은 만큼, 이 한권의 책에는 20대를 통과해 30대로 넘어온 작가와 우리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 25일 김애란 작가와 만나 '비행운'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동시대의 아픔 끌어안으며 한층 더 깊어져= 뉴타운 재개발 열풍과 용산 참사,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와 불법 다단계에 빠진 대학생, 그리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폭우. 그녀가 작품들을 쓸 당시,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사건사고다. '비행운'에 실린 작품들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면 이는 아마도 우리가 똑바로 마주하기 버거운 현실이 소설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물속 골리앗'의 소년과 '서른'의 주인공 강수인이 처한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물속 골리앗'의 어린 소년은 크레인 위에서 체불 임금을 요구하다 실족사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잃는다.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처한 아파트에 혼자 남은 소년은 홍수를 피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지만 그 앞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거대한 흙탕물뿐이다.
'서른'의 주인공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첫사랑 때문에 발 들인 다단계집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끼던 학원 제자를 끌어들인다. 빠져나왔다는 안도도 잠시 뿐, 그녀는 제자가 자살기도 후 식물인간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두 작품에는 작가가 집필할 당시 벌어지던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이 뒤엉켜있다. 김애란 작가는 "사건들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건 오히려 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품 속에 스며들도록 담아냈다"고 말한다.
이어 "사건에 대해 궁금하면 정확한 사실로 이루어진 뉴스나 기사를 보면 되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삶"이라고 덧붙인다. 삶이 먼저 부각돼야 오히려 사건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 책에서는 사실 안에 갇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실을 해치지도 않도록 균형 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김애란 소설의 힘은 '유머'와 '공감'= 이야기가 무겁게 흘러도 김애란의 소설은 특유의 활기를 잃지 않는다. 김애란의 작품에 대해 말할 때 꼭 등장하는 키워드인 '유머' 덕분이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유머란 무엇일까. 가끔은 쓰고 나서 혼자 키득키득대며 웃곤 한다는 작가에게 물었다.
김 작가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 유머"라며 '두근두근 내인생'의 주인공 아름이 이야기를 꺼냈다. 빨리 늙어버리는 병인 조로증에 걸린 한아름은 보통명사로 보면 병자, 약자, 환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자를 바라보는 습관적인 시선과 태도로 한아름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한아름이 자신의 비극적인 상황 안에서 재밌는 반응을 보이면 그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라 한아름이라는 고유명사가 된다. 김애란 작가는 "주인공의 성격, 삶의 태도를 고유하게 만들어 주고 주인공에게 자존감을 줄 수 있는 좋은 방식이 바로 유머"라고 설명했다.
'유머'에 이어 사람들이 김애란의 소설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감' 이다. 김 작가는 "특히 단편의 경우 생활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많아 독자들의 경험과 겹칠 때도 많은 것 같다"며 "중요한 것은 상황의 복원이 아니라 감정의 복원"이라고 했다.
자주 일어나는 상황 자체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상황에 처한 인물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해서 글을 썼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작가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면 아마 '감정의 복원'을 통해 작가와 교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20대를 통과해 30대로 접어든 작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여전히 '유머'와 '공감'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층 다양해졌다. 단순히 직업, 나이라는 표면적인 부분뿐만 아니다.
김 작가는 "내 20대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딘가 모자라거나 부족하고, 때론 우스꽝스러운 못난 사람들이었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며 "이제 30대가 되니 나쁜 사람들이 작품에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나쁜 사람'들이 대단한 악인은 아니다. 김 작가는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도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 보통 성인들 수준"이라며 "이런 인물들을 좋아할 순 없어도 납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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