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한은 <상> 중앙은행, 소통도 자부심도 사라졌나
"법규실 자체판단" 진땀 뺀 설명
김총재 대한 내부불만 주목해야
깜짝 금리인하도 혼란 부추겨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한국은행이 흔들리고 있다. 통화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 그 하나요, 내부 조직원들의 자긍심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둘이다. 흔들리는 한국은행의 위상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25일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장. 의원들의 답변에 나선 김중수 한은 총재는 "한은 익명게시판 글을 둘러싼 논란은 직원들 간에 일어난 일일 뿐"이라며 "한은 법규실장이 법무법인에 질의한 것은 스스로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또 "법규실의 대응이 한은 직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이번 일을 직원 '사찰'로 받아들이는 것은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한은 게시판을 둘러싼 사찰 파문에 대해 한은 총재로서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회에서 벌어진 이날의 촌극은 최근 한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한은총재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사찰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다.
노조가 '사찰'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정작 사찰을 받았다기 보다는 이로 인한 한은 내부의 소통부재를 지적하고자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찰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자존심을 먹고사는 한은 조직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다.
금융통화위원회라는 협의체를 통해 기준금리를 논의ㆍ결정하는 등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갖춘 한은이 정작 내부 비판 수용에 인색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한은 직원은 "김 총재는 2010년 취임할 때부터 한은의 정체된 조직문화를 꾸짖으며 변화를 주문해왔다"며 "이번 사태의 배경엔 김 총재에 대한 거부감과 불만이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의 '돌발적' 기준금리 인하도 논란거리다. 한은은 전격적으로 0.25% 포인트 금리인하를 단행해, 이날 채권시장은 큰 혼란을 겪기도 했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것이야 한은의 고유권한이지만 시장과의 소통 부재는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게 한다.
실제 6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한은은 상당수 금통위원의 비판에도 낙관론을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며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과 한 달 만에 금통위원들의 의사가 정반대로 나타났다면 이에 상응하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고, 소통해야 하는 것도 한은의 임무다.
6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은은 "대외 불확실성이 높고 현재의 완화 기조가 지속되고 있어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내렸다. 금통위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미국 연준이나 EU의 통화정책 회의는 금리결정 전 금리에 대한 신호를 시장에 주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줄이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금리인하는 시장과 아무런 교감 없이 이뤄져 오히려 시장의 혼란만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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