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한번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어제 예정에 없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며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구속된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측근들의 비리를 두고 한 말이다.
정권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줄지어 잡혀 가고 급기야 대통령이 사과하는 불행은 언제 사라질 것인가. 국민은 화나고 안타깝다.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하다던 이 정권의 다짐은 어디로 갔나. 왜 어김없이 친인척, 측근 비리로 무너지는가. 사과하면 국민은 언제나 용서해 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번이 여섯 번 째다. 지난 2월에도 측근 비리로 사과했다.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했지만, 진정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국민이다.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나온 후 새누리당은 "남은 임기동안 도덕적 해이와 비리예방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며 "측근 비리 예방을 위해 제도적, 법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민주당은 "알맹이가 없다"면서 "대선자금에 대한 자기 고백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여야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진정성있는 사과의 첫 걸음은 측근 비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투명하게 낱낱이 규명하는 일이다. 엄정한 제도적, 법적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와 행동, 주변 인물들의 도덕성이다. 국민들이 이 대통령에게 실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숱한 경고의 징후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정권 초기부터 친인척의 권력남용과 측근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다짐과는 달리 부정부패와 비리를 예방하고 척결하려는 실질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
이 대통령이 사과한 날,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과 김세욱 전 행정관이 함께 구속됐다. 같은 날 국무회의는 신설 언론문화협력 대사에 이동관 전 공보수석비서관을 임명하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에게 홍조근정훈장을 수여하기로 의결했다. 이 대통령의 사과, 심기일전해 국정을 다잡겠다는 다짐이 국민에게 선뜻 와 닿지 않은 이유를 이 날의 엇갈린 풍경이 설명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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