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오종탁 기자]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의 후폭풍이 만만찮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행보와 직결된다.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지난해 말 비대위 체제가 시작된 이후 줄곧 강조해온 쇄신과 신뢰의 이미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전격 사퇴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당내의 반대 여론을 물리치며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관철시키는 등 쇄신에 방점을 찍고 어느정도 성과를 거뒀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 카드는 무노동 무임금에 이은 이 원내대표의 야심작으로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정 의원 체포안 부결로 무너졌다. 이 원내대표의 의지를 바탕으로 진행되던 '박근혜표 쇄신'이 내부의 반발로 탄력을 잃은 셈이다.
전날 본회의에서 정 의원 체포안 부결을 호소했던 김용태 의원은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국회 쇄신이 좌초됐다는) 이 원내대표 사퇴의 변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이 원내대표가 '(정두언 의원이) 희생양이지만 어쩔 수 있겠느냐'고 얘기했던 게 의원들로부터 비토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의 쇄신 드라이브가 한편으로는 의원들의 반감을 사며 역풍을 불러왔다는 걸 보여주는 발언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 원내대표의 사퇴에는 자신의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판단 못지 않게 박 전 위원장의 대권 행보에 누를 끼쳤다는 일종의 반성과 자책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를 경계하던 이 원내대표가 증세론을 꺼내들며 대선 복지공약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던 점도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대목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한구 원내대표 재신임 등 수습방안을 논의키로 했으나, 이 원내대표가 사퇴를 번복해서 사태를 봉합하는 결과가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헌당규상 원내대표가 임기 중에 사퇴하면 7일 이내에 의총을 열어 후임 원내대표를 선출해야 하는데 이 또한 간단치가 않다.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거나 후보로 거론됐던 인사들이 박 전 위원장 대선경선 캠프에 가 있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에 이어 2위를 했던 남경필 의원은 정 의원 체포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대선 정국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에 오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
정 의원 체포안 부결 사태는 동시에 야권에 정치적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후보에게 묻고 싶다, 어제 그 역사의 현장에 왜 없었느냐"면서 "박근혜 후보의 입장표명이 없으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현실"이라고 비난했다.
김 전 지사는 또 "박근혜 후보에게 요구한다, 어제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전날 정두언 체포안 등의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불참했다. 박 전 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기재위의 첫 번째 전체회의에 불참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같은날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이한구 대표님, 빨리 국회로 돌아오시라"며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없으면, 국회가 마비되면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비난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국회가 실질적으로 멈춰버릴 수 있고, 이는 여당 원내대표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곡동 사저 문제, 민간인사찰 문제 등에 관한 특검과 국정조사 등 야권이 노리고 있는 정치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다.
박 원내대표는 또 박근혜 전 위원장을 향해 "본회의 참석이 국회의원의 원칙과 소신 아니냐"면서 "그런데 자기 선거운동에 국회의원 수명 데리고 가서 '내 꿈 이뤄지는 나라 만들겠다'고 하니, 자기 꿈 이뤄지면 뭐하나, 국민 꿈 이뤄져야지"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조사 및 신병확보 절차에 대한 재검토 논의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현행 형사소송규정상 국회의 체포동의가 없으면 법원이 회기 중에 국회의원을 심문하거나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
정두언 의원 본인부터가 문제제기를 하고 나설 정도다. 정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서 "(저는)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임하겠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정작 제가 제발로 가서 심사를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려면 포기할 방법을 만들어놓고 포기하는 게 순서"라고 주장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오종탁 기자 tak@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