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얼마 필요하신데? 50만원? 에이 그 정도는 못줘요. 줄도 짧고 오래된거라… 30만원은 드리겠는데…" 서울 명동에 위치한 A전당포. 명품 시계 '오메가'를 내놓자 점주가 가격을 제시했다. 돋보기를 들이 대고 담보물을 살펴보더니 이내 다른 곳에 전화를 걸어 "여기 명동인데 오메가 어때?"라고 묻기도 한다.
인근의 또다른 B전당포.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점주가 손님을 맞았다. 시계를 보자마자 "얼마주고 샀어요 이거?"라고 묻는다. "선물로 받아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얼마 주고 샀는지, 얼마 필요한지 말 안하면 어떡해?"라며 되려 호통을 친다. 돋보기 안경으로 시계를 10분여 살펴보더니 "20만원 정도는 되겠네!"라고 말했다.
같은 시계를 들고 강남에 위치한 '××캐쉬' 간판을 단 C전당포를 찾았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라고 친절히 묻더니 시계를 가져간다. 직원은 잠시 후 오렌지주스 잔을 건네며 "얼마 필요하신데요? 80만원 정도 되겠어요"라고 전했다. 손님이 "명품 가방도 하나 있는데"라고 하자 어느 브랜드인지, 얼마 짜리인지 묻더니 "우리는 시세의 70~80%까지 빌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사동의 D명품매매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주는 인터넷으로 물건 가격을 조회한 후 "55만원! 지금 바로 계좌로 깔끔하게 입금해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50만원에서 70만원 사이라고 하더니 왜 55만원 밖에 안되느냐?"고 항의하자 "고객님들은 항상 높은 가격만 생각한다니까"라며 혼잣말 하듯 웃는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돈없는 서민들의 마지막 보루'로 꼽혔던 서울 명동의 전당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이곳의 '사채 상권' 이미지도 이제는 퇴색했다. 일본어와 중국어 간판이 즐비한 명동 일대에서 전당포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찾는 이가 줄면서 전당포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전당포들도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아 더이상 손님을 끌지 못하고 있다.
B전당포 주인 박모씨는 "올해 안에 전당포를 접을 생각"이라며 "상권 자체가 죽어 강남처럼 투자를 할 의욕도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외환위기 이후 한때 전당포 찾는 서민들이 늘었을 뿐, 신용카드 나온 이후론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토로했다.
반면 강남 신사동 일대 전당포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건물에는 전당서비스와 중고명품 매매를 겸업하는 업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한 건물에는 전당포 3곳과 명품 수선업체 1곳이 나란히 입주해 있었다.
이곳 전당포 관계자는 "신사동에만 전당포가 6곳, 명품샵과 겸하는 곳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업체들이 있다"며 "손님들이 업체마다 전화를 걸어 미리 대출가능한 액수를 비교해보고 오기 때문에 업체간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다"고 전했다.
실제 이곳 중고명품 매매점과 전당포 일대에서는 명품 가방을 큰 쇼핑백에 넣고 가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C전당포 관계자는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 가운데 강남 사람은 40% 정도고 나머지는 인천이나 경기도, 부산 등 다양하다"며 "아무래도 압구정 인근이라는 네임밸류가 있어서 손님들이 더 많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신사동 전당포의 경우 규모도 크고 인터넷 홍보도 잘돼 있는 곳이 많다"며 "지방고객들을 위해 직원들이 직접 담보물품을 픽업해오는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점이라면 전당포를 찾는 목적이다. D전당포 관계자는 "루이비통 가방이나 다이아몬드 반지를 맡기러 오는 여성들은 대체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물건을 맡긴다"며 "젊은 세대의 경우 DSLR 카메라나 노트북을 주로 맡기는데, 워낙 소액이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채은 기자 fak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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