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일 기자, 이민우 기자]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권말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과 잇따른 측근비리. 어느 정권도 피해자기 못했던 '임기말 난맥상'이 이번에도 재연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사법처리될 위기에 놓였고, 검찰의 칼끝은 대선자금 의혹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라던 이 대통령의 '호언'도 빛을 잃었다. 여기에 포퓰리즘(대중영합)적 반(反)대기업 정책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정치권에는 차기 정권에 발을 들여 놓으려는 사람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유럽발 경제위기로 불황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혼란이다.
1. 대통령 형님.아들, 검찰 출두 = 대통령의 측근ㆍ친인척 비리 사건은 레임덕의 잣대다. 검찰이 인사권자인 현재 권력에게 칼을 댈 수 있다는 자체가 권력누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임기가 끝으로 다가갈수록 검찰의 칼 끝은 권력의 중심부를 향했다. 이같은 비극은 5년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상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석했다. 이 전 의원은 솔로몬저축은행과 기업체 등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은 뒤 밤늦게 귀가했다.
검찰은 이번주 중 이 전 의원의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미 기소된 주요 측근ㆍ친인척 18명에 이어 19번째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 말 수감복을 입은 측근들의 '급'도 갈수록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데 이어 '왕차관'이라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건설업체 파이시티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MB의 멘토'로 불려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구속됐다.
역대 정권의 퇴장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에는 한보그룹 사태로 '소통령'으로 불렸던 차남 현철 씨가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노갑 의원과 차남 홍업씨, 삼남 홍걸씨도 2002년 구속됐다.
노무현 정권 때는 임기말인 2007년 부산 건설업자의 인허가 청탁비리에 이어 2008년에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임기말 초대형 권력비리의 운명은 현 정권도 피해가지 못했다.
2. 경제민주화? 재벌 군기잡기 = 이른바 '재벌 때리기'는 대선 정국의 공통분모로 자리잡았다. 올해 치러질 대선은 '친기업 대 반기업'의 대결양상이 10년 만에 깨질 것으로 보인다.
대선의 키워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재벌 규제'로 이동했다. 반기업적 성향이 강한 야당은 선거때마다 고강도 재벌개혁 정책을 들고 나왔다. 현재는 여당마저 선거를 앞두고 친서민 기조를 강화하며 재벌을 공격하는데 동참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세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진보개혁세력은 재벌 개혁을 통한 분배를 강조했다.
정치권의 재벌개혁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3일 열린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초청강연에 소속 의원 50여 명의 의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근혜캠프에 참여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은 경선 캠프가 문을 열자마자 경제민주화를 놓고 당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연이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확대와 환상현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을 주장했다.
민주통합당도 당 차원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 재벌세 도입 등을 쏟아내고 있다. 아시아경제신문이 19대 국회의원이 첫달 발의한 법안을 분석한 결과 대기업 규제와 공정거래 질서 확립 등의 경제민주화 법안은 35건에 달했다.
3. 다음권력, 눈치판과 줄서기 = '이명박 전 대통령.' 지난 3일 조선일보가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오기하는 대형사고를 냈다. 한바탕 해프닝에 그쳤지만 임기 말 레임덕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일간지가 현 권력을 등지고 미래권력을 향해 '줄서기'를 했다는 말까지 여의도 정가에 파다하게 돌았다.
요즘 여의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거론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4ㆍ11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사진을 빼고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인연을 강조하는데 공을 들였다.
'박근혜당'이 되어버린 새누리당에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은 이재오ㆍ심재철 의원만 남았다는 흉흉한 소리도 들린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누가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하면 당지도부와 다선ㆍ초선 의원을 가리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박(朴) 구하기'에 온몸을 던진다. 박심(朴心) 아래 대동단결(大同團結)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도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전 위원장과 유일하게 대등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향한 정치권의 구애도 뜨겁다.
서로가 안철수의 복심(腹心)이라며 나서는 바람에 '민간인' 안 원장이 '교통정리'를 위해 정치인들이나 두는 공식 대변인을 임명했을 정도다.
민주통합당 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상임고문의 대선캠프에도 사람이 구름처럼 몰리고 있다. 문 고문이 '친노(친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연 확장에 나서자 민주당의 전ㆍ현직 의원들은 이른바 '문캠'에 들어가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고위공무원들에게도 요즘 청와대나 새누리당행(行)은 타고 싶지 않은 열차다. 전 정권 인물로 낙인 찍혀 차기 정부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무추진비를 포함해 연봉 1∼2억이 넘는 공기관이나 출연연 기관장 자리도 꺼린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물러나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명박 출범 초기 이전 정부서 임명된 기관장들에게 대놓고 "알아서 나가라"고 종용해 비난을 샀기 때문이다.
김종일 기자 livewin@
이민우 기자 m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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