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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한용운의 '낙화'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37초 소요

떨어진 꽃이 힘없이 대지의 품에 안길 때/애처로운 남은 향기가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가는 바람이 적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떨어진 꽃이 굴러서 알지도 못하는 집의 울타리 사이로 들어갈 때에,/쇠잔한 붉은 빛이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 우린 꽃이 떨어지면 놀라서 그것을 쳐다보지만, 곧 시선을 거둔다. 하지만 시인은 낙화를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꽃 한 송이가 대지에 구르며 그 몸이 품고 있던 향기를 조금씩 바람에 내주며 서서이 무향(無香)의 몸이 되어가는 것을 코끝으로 느낀다. 사라지는 향기는 어디로 가는가. 실바람이 키작은 풀떨기 하나와 서로 말 걸며 함께 떠는 곳으로 향기는 날아간다. 그 붉은 빛은 어디로 가는가. 시인은 붉음이 쓸쓸히 실색(失色)하며 시들해지는 서러운 현장을 지켜본다. 그 꽃이 다시 바람에 날려 언덕을 넘어갈 때 굳이 따라가 그 그림자가 머무는 자리를 본다. 거기엔 봄을 빼앗는 악마가 있다. 낙화들의 숨결을 가만히 수습하는 저 존재는 무엇인가. 이 아름다운 '낙화'의 시에, 이 작품이 발표된 1936년 봄날이 얹히면, 어쩔 수 없이 심각해진다. 모가지가 댕겅 잘린 낙화 하나. 그것을 채취하는 악마. 58세의 만해가, 엄혹의 시절을 스토리텔링하고 있지 않은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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