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소 경기(65) 100만 관중 돌파, 돌아온 해외파들의 선전, 치열한 순위 경쟁. 프로야구가 기분 좋게 5월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야구팬들의 눈과 귀는 즐겁다.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건 두산 팬들일 것이다. 선수단은 소리 없이 강하다. 다양한 화제를 내놓는 건 아니지만 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3일 현재 1위(11승1무5패)를 달린다. 전력은 지난 시즌보다 한층 안정됐다. 투타 모두가 그러하다. 서두르는 법이 없는 김진욱 감독 특유의 선수 관리까지 더 해져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수비다. 매 경기 건실함을 뽐내며 강팀으로 발전하는 주춧돌을 놓는다. 양의지, 최재훈 등이 버티는 포수진은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의 합류로 블로킹, 송구, 미트질 등이 한층 섬세해졌다. 내야진의 수비도 땅볼 처리 동작 등이 이전보다 부드러워지며 국가대표 급으로 성장했다. 가장 안정된 수비를 펼치는 건 외야진이다. 김현수, 이종욱, 정수빈, 임재철, 이성열 등은 모두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갖췄다. 넓은 수비범위까지 겸비해 투수진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만든다.
거론한 다섯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건 정수빈이다. 우익수를 담당하는 그는 내야수 같은 빠른 송구동작과 강한 송구, 정확성 등을 모두 갖췄다. 이 때문에 상대 선수단의 3루 주루코치들은 1루 주자가 우전안타 때 3루를 바라보면 과감하게 오른팔을 돌리지 못한다. 이는 우전안타 때 2루 주자가 홈을 노리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3루 주자가 우익수 뜬공에 홈 승부를 걸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수빈은 타격과 주루 플레이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3할3푼3리의 시즌 타율은 전체 8위, 팀 내 2위다. 특히 루타는 이종욱과 함께 팀 내 1위(24)를 달린다. 김민우(넥센), 안치홍(KIA)과 함께 3루타(2)를 가장 많이 때리기도 했다. 빠른 발과 주루 센스도 빼놓을 수 없다.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3개의 도루를 기록했는데 그 성공률은 100%를 자랑한다. 기록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매 경기 한 베이스를 더 가는 러닝으로 팀에 타점 기회까지 제공한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건 경기에 임하는 자세다. 철저하게 팀플레이를 펼치며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산이 ‘신형 엔진’을 달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4월 29일 잠실 KIA전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정수빈은 팀이 2-3으로 뒤진 7회 1사 1, 3루에서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며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경기 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진욱 감독이 어떻게든 3루 주자의 득점을 도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순간 보다 확실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일반 타격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 번트가 흐름을 바꿔놓은 것 같아 기쁘다.”
이날 정수빈은 4-3으로 앞선 9회 수비에서 한 번 더 팀을 구해냈다. 신종길의 우전안타 타구를 잡자마자 3루에 던져 1루 주자 윤완주를 태그 아웃시켰다. 빨랫줄과 같은 송구는 3루수 이원석의 글러브에 정확히 꽂혔다. 두산은 무사 1, 3루 위기를 1사 1루로 바꾸어놓은 정수빈의 호수비에 힘입어 에이스 윤석민을 내세운 KIA를 4-3으로 꺾고 롯데와 공동 1위로 4월을 매듭지었다.
정수빈의 나이는 이제 겨우 22살. 하지만 팀에서의 위치는 김현수, 김동주 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국가대표들이 즐비한 두산 외야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더니 어느덧 간판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두산 외야를 향후 10년 이상 책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프로야구는 기록으로 나타나는 타율, 타점, 홈런만큼이나 승리로 연결되는 세밀함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SK가 이를 증명한다. 선수단은 타이틀 홀더는 많지 않았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아는 선수들이 많았기에 오랜 시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수빈은 그 역할을 곧잘 해내고 있다. 그의 활약이 두산의 성적과 비례 관계를 보일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두산이 10년 동안 이루지 못한 한국시리즈 우승은 정수빈의 손발에 달렸다.
마해영 XTM 해설위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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