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한 달여 전 기자가 만났던 국내 대형 조선소 영업 담당 고위 임원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줬습니다.
자국 건조주의를 강력히 추진하던 브라질 정부가 외국 업체, 특히 한국 조선소에 선박 건조를 맡길 것이라는 거죠. 빠르면 올 하반기에 브라질발 드릴십ㆍ유조선 발주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그의 관측입니다. 20척이 넘는 드릴십 물량이 풀린다면 시장을 사실상 석권하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당시에는 정말 그럴까 하는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놓고 볼 때 현실화 될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조선업계에 '브라질'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국영 석유업체인 페트로브라스가 28척 규모의 드릴십 발주 계획을 발표했을 때 부터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신조 발주가 멈춘 그 때의 상황에서 브라질은 반드시 정복해야 할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브라질 정부는 이번 발주를 자국 조선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조선ㆍ플랜트 건조 기술을 쌓는 기회로 삼겠다며 선박 건조의 70% 이상의 작업이 브라질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외국기업이 직접 계약을 따내려면 조선소를 현지에 새로 짓거나 기술을 브라질 조선소에 이전하라는 배짱을 부린 것이죠. 결국 지난해 실시된 1차 발주분 드릴십 7척에는 자국 기업들만 참여했고, 아틀란티코 조선소(EAS)가 따냈습니다.
EAS는 삼성중공업이 지분을 참여하고 기술을 제공했던 조선소입니다. 삼성중공업이 뒤를 떠받치고 있으니 잘 돌아가겠지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업계 정보에 따르면 그동안 EAS가 납기를 맞춰 건조한 선박 수는 4척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나마 건조 후 불량이 발생해 인도를 못했다는데, 숙련도가 떨어지는 기능공들이 만들다 보니 품질을 못 맞춰 벌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브라질 대기업들도 조선소에 대한 지식과 경영 노하우가 부족해 대처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조선업은 설계가와 기술자 한 두 명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작업 오차 허용한계가 1mm에 불과한 해양플랜트의 성공적인 건조는 설계자와 기능공들의 능력이 최고 수준이어야 하며, 자재조달ㆍ물류ㆍ경영 등 조선소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들간 완벽한 팀웍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 노하우는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데, 처음으로 드릴십 설계도를 본 브라질 조선사들에게는 무리라고 합니다.
결국 삼성중공업은 EAS 위탁경영 요청을 거절하고 지분도 매각한 뒤 브라질 사업에서 손을 털었다고 합니다. 사업을 진행해봤자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정부를 설득해 드릴십 건조를 외국 조선소에 맡기고 싶어하는 데 브라질 정부도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자국 건조주의만 주장할 명분이 없어 보입니다.
어쨌건 한국에게는 잠재적 긍정 신호인데요. 조선업에 주식 투자를 고려중이신 분들께서는 브라질발 소식에 관심을 기울여보시면 좋은 기회를 잡으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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