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지연진 기자] 지난해 천문학적인 적자를 낸 한국전력이 또 다시 '방만 경영'의 구설에 올랐다. 연간 3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공기업이 특정 매체의 드라마에 수억원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엔 정치권이 연루 돼 공기업과 정치권이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정경유착'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20일 한전과 증권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IFRS 연결 기준으로 3조3705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4ㆍ4분기에만 2조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매출액은 43조5323억원, 영업손실은 6849억원이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한전이 미국과 같은 민영 기업이었으면 벌써 생존의 위협에 도달했을 것"이라며 "작년 말 기준 순부채만 약 44조원에 이르는데 조달 금리를 4%로 잡더라도 1년 금융비용이 1조6000억원"이라고 재무 구조를 우려했다.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은 전기료에 원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탓이 크다. 현재 한전 전기료의 원가 보전분은 90%에 불과하다. 100원짜리 전기를 만들어 90원에 판다는 얘기다.
하지만 왜곡된 전기 요금 체계로 인해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이 특정 드라마 제작에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것에 대해선 논란이 거세다. 한전과 6개 발전 자회사(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 등)는 '한반도' 드라마 제작을 위해 한전이 1억원, 6개 발전 자회사가 4000만원씩 등 총 3억4000만원의 협찬금을 제공키로 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홍보 효과를 위해 비용을 지출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광고비용은 기업 활동에 있어 투자라고 볼 수 있지만 적자 공기업의 경우 얘기가 다르다. 물가 인상을 우려해 전기료를 억제한 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사건은 곤혹스럽다. 감사원 감사 적발 사안이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적자 공기업의 부담이 결국은 국민에게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전 관계자는 "권 의원이 강요한 것은 아니다"며 "한반도는 에너지 관련 드라마로, 스마트그리드나 전기 절약 등 우리 입장에서는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무언의 압박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발전 자회사 관계자는 "한전은 따로 (협찬을) 하고 발전 자회사는 각각 나누는 방식으로 금액을 조율했다"며 "홍보 효과는 둘째 치고 정치권의 제안을 한전이 수용하면서 자회사도 동참하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데 그의 제안이 진짜 제안에 그쳤겠느냐"고 토로했다.
논란이 된 '한반도'는 조선일보의 종편채널 TV조선이 개국을 맞아 야심차게 만든 가상 통일 드라마다. 제작 준비 기간 4년, 루마니아를 비롯한 해외 로케이션 등으로 100억원의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통일을 앞둔 남북이 합작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과정과 개발팀에 참여한 남북 연구진의 애틋한 로맨스가 담겼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첫 방송인 지난 6일 시청률은 1회분이1.649%, 2회분은 1.205%였다. 그러나 3회분(13일)과 4회분(14일) 시청률은 각각 1.118%와 1.009%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김혜원 기자 kimhye@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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