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보시다시피 손님이 없다. 싼 매물은 거래가 됐는데 서울시 재건축 소형 확대 발표 이후엔 '급랭'이다."(개포주공1단지 인근 H공인중개소 대표)
강남 부동산 시장에서는 긴장감 속에 한파가 그대로 느껴진다. 지난 9일 서울시가 '재건축 때 절반 이상 소형주택 의무화' 방침을 내놓은 이후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래가 끊기다시피 했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소형 주택이 많은 개포주공아파트. 18일 찾은 단지 내 부동산은 텅 비어 있었다. 혼자 컴퓨터 바둑을 두던 L공인중개소 대표는 "거래가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서울시 발표 이후 매매가가 계속 떨어져 평형별로 1000만원 안팎 하락했다"고 말했다.
전세시장도 예년만 못하다. H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원래 학군수요와 봄 이사철이라 전세 수요가 늘지만 올해에는 12월과 1월 가격 그대로 전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개포주공 뿐 아니라 인근 은마아파트도 1억원 이상 전셋값이 떨어졌다"며 강남의 침체된 상황을 전했다.
얼어붙은 시장과 맞물려 개포주공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개포주공2단지 쪽 경인공인중개소 대표인 김태웅(62)씨는 "거래가 전무한 상태"라며 "주민들이 뿔났다. 소형주택 50% 의무화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도 어긋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조합원이기도 한 김씨는 "서울시에서 강남구청에 소형주택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재건축 심의 통과를 어렵게 하겠다고 협박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서울시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은 했지만 박원순 시장의 입김이 아니고서야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조합원 노종림(55)씨는 "투기가 아니라 20년간 이 집에서 살아왔고 이제 내 지역에서 더 넓게 살고 싶은 것 뿐"이라며 "나중에 자식들이 집에 찾아왔을 때 잘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1~2인 가구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매일 녹물 먹어봤느냐. 우리 집은 녹물 때문에 변기통도 빨갛다"고 덧붙였다.
K공인중개소 대표는 "80%가 세입자인 개포는 특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집주인이 전국에 퍼져 있는데 2009년 6월께 최고점이던 17평형 집값이 지금은 4억2000만원 가량 떨어졌다"며 "이들이 소형평형을 얻고자 투자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대변했다. 13억8000만원까지 거래됐던 것이 지금은 9억원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개포주공 조합원들은 2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 중이다. 소형 50% 의무화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곰팡이가 슬은 30년 묵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새 집에서 살고 싶다는 주장도 하겠다고 밝혔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소환과 사퇴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서초구에 위치한 신반포6차 역시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분위기다. 용적률 조정 결정이 보류되면서 주민들은 재건축 기대를 접었다. 아파트 거래도 확연히 줄었다. 통상 공인중개사 사무소에는 주말에 손님이 많지만 잠원동 쪽 업소 대부분은 저녁무렵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문을 연 M공인중개소 김 모 실장은 "거래가 많지 않으면 보통 일찍 퇴근한다"며 "거래량은 시가의 선행지표인데 작년대비 10분의 1로 줄었다"고 귀띔했다. "지난1월 반포자이나 래미안도 총 2건의 거래만 있었다"고 말했다.
너무 비싼 강남 집값의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김 실장은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바꾸는 매물이 늘었는데 보통 월세 가격이 120만~200만원으로 일반인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경기도 안 좋은데다 특히 강남은 너무 비싸서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한강변 아파트인 잠실주공5단지도 울상이다. 인근 J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의 재건축 규제로 종상향도 불투명해져 거래가 뜸해졌다"고 토로했다. 잠실주공5단지에는 재건축을 촉진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찬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박미주 기자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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