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 CSI' 뜨면 증시가 쫀다
[아시아경제 정재우 기자]“밤길 조심해라, 칼침 맞을 준비해라.”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섬뜩한 대사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런 협박을 심심치 않게 들으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장을 교란하는 작전 세력을 엄단하기 위해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이 야심차게 구성한 테마주 특별조사팀원들이다. 이들이 조사를 시작했다거나 작전세력을 포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관련주 주가가 폭락하니 루머나 정치테마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꾼들에게는 눈엣가시다.
금감원은 테마주 작전세력을 적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특별조사팀을 금감원 내 조사분야의 최고 실력자들로 구성했다. ‘테마주CSI(과학수사대)’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마주CSI를 이끌고 있는 하은수 팀장은 입으로만 전해오던 시세조종 분석기법을 처음으로 활자화해 체계적인 분석기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사국 전입직원 교육을 전담하고 있기도 하다. 2005년 줄기세포 테마주 에스씨에프(구 신촌사료)의 첫 시세조종혐의를 적발해냈던 것부터 최근 김준홍 SK 전 이사가 개입됐던 자원개발 테마주 글로웍스 사건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최근 보험사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화제가 된 이영두 그린손해보험 회장에 대한 검찰고발 건도 그의 작품이다.
테마주CSI 팀원들도 만만찮은 내공을 자랑한다. 검사·조사 분야 8년차 베테랑 김원택 수석조사역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시세조종 혐의를 밝혀낸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업계사람들이 대면을 꺼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기본에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최원우 수석조사역은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기업에 투자한 뒤 주가가 떨어지자 위탁자산의 수익률을 상승시킬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행위를 적발하는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조사경력 3년차인 김석훈 선임조사역은 최근 세를 확장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야 조사에 특출난 능력을 지닌 미래형 인재다. 특유의 꼼꼼함으로 인터넷 증권게시판, 메신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적발하고, 증권방송을 통해 시세조종 행위를 한 증권방송전문가를 검찰에 넘겼다.
한국거래소에서 잡아내지 못한 시세조종 혐의를 본인만의 독특한 분석법으로 찾아낸 전력도 있는 조사 전문통도 포진해있다. 조사경력 10년차의 김태화 선임은 시세조종 매매분석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양두호 선임은 검찰파견 근무 2년으로 금감원 조사와 검찰 수사업무를 모두 경험한 덕분에 무엇을 조사해야 효율적인 법집행이 가능한지 꿰고 있다.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기업의 펀더멘털을 중요시하고, 주가 흐름을 엄밀히 관찰하는 기본주의자다.
하지만 테마주CSI의 근무환경은 열악하다. 특별조사반을 꾸릴 공간이 부족해 불공정거래 혐의자들을 취조하던 ‘문답실’을 터 조사1국 한구석에 자리를 마련했다. 덕분에 하 팀장의 자리에는 기존 문답실에 설치돼 있던 ‘녹음시설’과 ‘감시카메라’가 완비돼 있을 정도다. 업무를 방해하는 각종 협박과 언론의 취재경쟁으로 인한 전화세례는 기본이고, 조사권 제약으로 인해 지체되고 낭비되는 시간에도 속이 탄다. 이런 환경에서 연일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다 보니 팀원 한 명은 신종플루에 걸리기까지 했다.
하 팀장은 “특별조사팀에 대한 애정어린 지적이라고 해도 때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팀원들 모두 스스로 ‘자본시장 파수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은 이르면 이달 말께 정치테마주 관련 작전세력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재우 기자 j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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