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까지 가짜제품 개발만 맡겨..직원들, 허송세월 보냈다고 한숨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악명 높은 애플의 비밀주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애플의 전직 직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인사이더 애플’이라는 책을 인용해 “애플은 신입 개발자에겐 가짜 제품개발만 맡겼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입직원은 물론 경력직을 채용해도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중요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불필요한 제품개발에 매진토록 해 일부 직원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다’할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전(前) 애플직원은 “경력직으로 입사한 한 엔지니어에겐 가짜 제품개발에 1년 넘도록 시키고 대신 9개월간의 심층 면접만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애플의 비밀주의는 자사의 신제품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려했던 고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지시에 따라 주로 외부인에 대한 통제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내부직원들 조차도 믿지 못하고 가짜 제품의 연구개발을 맡겼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애플의 비밀주의는 ‘공개된’ 비밀과도 같았다. 씨넷,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 등에 따르면 애플은 신제품 출시 전에 협력업체들에게 시제품을 선보이는 ‘비밀의 방’을 운영하고 있다.
창문 없이 밀폐형 구조인 이 방에 들어가려면 신원파악이 전제되며, 만약 시제품의 사진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를 대비해 시제품 시연하는 모습을 일일이 사진에 담아 놓은 다고 한다.
물론 시제품도 외형 디자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틀 속에 들어가 있다.
비밀유지서약은 애플을 그만 두고 난 후에도 3년간 지켜야 한다. 애플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전속 변호사들에게 고소당할 수 있다.
애플은 협력사 직원들에게도 비밀유지서약을 요구한다. 삼성, LG, SK텔레콤, KT 등 한국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반도체가 아이폰에 사용되지만 맘 놓고 얘기도 못한다. 비밀유지 서약 때문이다.
이러한 애플의 비밀주의는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에 대한 정보를 갈망하게 만들고 기대하게 하는 긍정적인 마케팅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때론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악영향도 일으키며 일종의 독이든 사과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차기 제품 구상은 물론이고 납품업체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 애플의 비밀주의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폰4S 등의 기기에서 배터리 고갈 현상이 발생한 것을 두고 애플의 고질적인 비밀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제품 생산 과정에서 철저한 비밀주의가 유지되면서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이다. 특히 아이폰4S의 경우 출시 이전에 애플 직원들조차 극소수만 사용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수백만명의 소비자들에게 전달된 뒤에야 테스트가 이뤄져 초기 사용자들의 불편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앞서 애플은 아이폰4의 안테나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범퍼를 추후에 지급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한편,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 CEO은 잡스의 비밀주의 철칙을 어느 정도는 깨뜨릴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쳐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도 필요한 전략이지만, 출시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됐을 때의 실망감을 최소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규성 기자 bo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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