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한달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담당 조정관은 공항 입국장에서 "할 얘기가 많다"고 했다.
다음 날 한국 외교통상부와 면담에 앞서서는 "북한과 이란의 상황은 연결돼(related) 있다"며 한국정부가 이란산 원유수입을 줄여야 한다고 직접 신호를 보냈다.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과 논의하러 왔지만 예상보다 강도 높은 발언에 정부도 압박을 받았을 법했다.
정작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에서는 양측은 북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걸로 전해졌다. 면담에 참석한 당국자는 "북핵과 이란산 원유감축 문제를 함께 거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인혼이 이처럼 화법에 변화를 준 건 '베테랑 외교관'으로서 당연해 보인다. 한국 정부와 국민간 생길 수 있는 인식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북한과 이란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아인혼의 직함과 맞물려 한국 국민들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 원유수입을 줄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아인혼은 대북제제 조정관과 대이란제재조정관을 겸하고 있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정세의 가장 큰 불안요인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감출 수밖에 없는,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한 '외교'의 속성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정부는 이란산 원유수입을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고 총리는 직접 산유국을 돌며 다른 수급처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란 원유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경제적으론 민간 차원의 손익과 미국·이란과의 관계에서 오는 득실을 따지는 일 외에도, 외교적으로 북핵문제가 더해지면서 중국·일본과의 역학관계도 신경써야 한다.
외교의 제1원칙은 국익이다. 제2, 3의 원칙이 있다면 제1원칙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공무원들은 평소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어려운 외무고시를 패스했고, 정부 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다. 실제로 능력 있는 공무원들을 기자도 여럿 만났다.
이제 그 실력을 제대로 한번 발휘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얽히고설킨 이란 원유 수입 제재안을 외교부 공무원들이 어떻게 솜씨 있게 처리할지, 외교부 공무원들은 카메룬 다이아 스캔들에서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왔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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