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명훈 주필]위로가 필요한 것은 청춘만이 아니다. 1만원짜리 송아지, 타는 농심, 매 맞는 학생, 자식의 아픔을 몰랐던 부모…. 또 있다. '노란 봉투'에 좌절하는 국민 여러분. 송아지 300마리 값이 들어 있었다는 봉투, 받은 자는 있는데 준 자는 없는 유령의 봉투 말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여. 들리는 것은 우울한 얘기뿐이다. 신년 벽두에 나눴던 덕담이 모두 부질없어 보인다. 가슴 한 켠을 채워 줄 위로의 말이 그립다.
문 밖의 찬 공기라도 마시면 좀 나아질까. 그렇다. 지난주 태평양 건너에서 들려온 몇 가지 소식이 그나마 작은 위안을 준다. 싸움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는 덤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고받은 말 펀치가 그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2'에서 권희원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 사장이 선공을 날렸다. 그는 "올해 3차원 입체영상(3D) TV에서 세계 1위를 하겠다"면서 "3D TV 1등은 스마트TV에서도 1등 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1위 삼성을 겨냥한 말이다.
다음 날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담당 사장이 딱 잘라 말했다. "beyond comparison(비교 불허)." LG는 경쟁상대가 아니란 뜻이다.
밖에서 벌이는 낯 뜨거운 집안싸움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그런 속 좁은 싸움이라면 위안이 될 수 없다. 전 세계 TV 브랜드는 370여개. 삼성과 LG는 이들 모두를 따돌리고 국적을 넘어 세계 TV 시장의 챔피언전에서 맞붙은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롤라, 인텔, 파나소닉, 드림웍스, 샤프, 소니, 하이얼, 창홍…. 삼성과 LG가 일합을 겨루는 링사이드 관객의 면면이다. 일본의 한 언론은 "삼성과 LG의 약진으로 일본 기업의 존재감이 엷어지고 있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LGㆍ삼성 라이벌전의 역사는 길고 깊다. 후발 삼성의 도전에도 금성사(LG전자 옛 이름)는 요지부동, '비교 불허'였다. 금성사와 맞장뜨기 위한 삼성의 시도는 집요했다. '금성'과 '삼성'이라는 이름에 착안해 '별들의 전쟁'이란 말을 만들어냈다. '금성사는 ㈜금성사이니 가나다 순으로 삼성을 앞에 써야 한다'는 억지도 불사했다.
그렇게 안방에서 치고받던 두 회사는 급기야 절대강자 일본을 넘어섰고, 지금 세계 정상을 다툰다. 올해 CES에서 LG의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는 최고인기상을 받았다. 같은 날 삼성은 세계 휴대폰시장의 거인 노키아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고 선언했다. 양보 불허의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오늘의 삼성과 LG를 만든 것은 아닐까.
CES가 열리던 시각. 디트로이트에서는 '북미 국제오토쇼'가 막을 올렸고 '북미 올해의 차'에 현대자동차의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가 뽑혔다. 미국 최대 시장조사업체 JD파워는 '2012 브랜드 재구매율 조사' 결과를 내놨다. 1위 현대차. 세계의 유명 브랜드를 끌어내리고 미국 고객충성도가 가장 높은 차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지난주는 마침 의미 있는 기념일(13일)이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공표 50주년. 국민소득은 100달러를 밑돌았고 세계 정상의 TV, 자동차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후 50년. 압축 성장한 한국 경제는 저개발국의 로망이 되었다.
격변의 세월을 불변의 자세로 버텨내는 불가사의한 생명력이 있다. 정치다. '(쿠데타를 부른) 정치인들의 구태, 부패, 무능과 파쟁'(5ㆍ16 직후 한 신문사설)은 50년을 견디며 '돈봉투'로 살아나 숨 쉰다.
그런 '돈봉투'에도 나름의 위안이 없지는 않다. 정치가 서 있어도 세상은 나아간다는 것, 부패에 칼을 제대로 대면 '복지 재원'의 역설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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