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주야장천 끌어왔던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의 작은 윤 선생(서지석)님의 사랑 고백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웬걸,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박 선생(박하선)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더군요. 사실 전 별 기대를 안 했어요. 어째 박하선 선생이 선뜻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어영부영 떠밀려 사귀게 됐던 전 남자친구 고영욱에 대한 미련이나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늘 자기감정에 명확치 않은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하기야 자장면 하나 시킬 때도 30분씩 고민한다는 사람에게 뭘 바라겠어요. 솔직히 우리가 하선 씨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망정이지 모르는 처지였더라면 여우 짓도 가지가지로 한다며 비난했을 일들이 참 많지 않았나요?
박 선생의 마음을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지석 씨에게 좀 신세를 졌어야죠. 운전하다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하던 날도 시키는 대로 했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고 원망을 하며 지석 씨를 불렀는가 하면,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들고 산사로 고영욱을 찾아 갈 때도 지석 씨가 차로 데려다 주고 그 짐을 다 들어줬잖아요. 지난번 지갑 잃어버리던 날도 마찬가지고요. 그때마다 매번 “아니에요, 미안해요. 괜찮아요”라고 극구 사양하지만 결국엔 이런저런 도움을 다 받고 마는 박 선생이셨습니다. 재차 말하지만 하선 씨가 얼마나 고운 마음씨를 지녔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처자인지 몰랐다면 최강 민폐녀 자리에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고요. 게다가 눈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요? 예전에 어렵사리 구했던 야구 표 일도 그렇고 얼마 전 이문세 콘서트 표도 그렇고, 남자가 예매표를 내밀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도 남을 나이잖아요? 모처럼 용기를 내 이 추운 날씨에 겉옷도 안 입은 채 버스정류장까지 달려가 데이트 신청을 했건만 친구랑 스키장 가는 길이라며 거절을 하다니요. 에고 답답해라. 이미 하선 씨는 지석 씨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었을 걸요. 그렇다면 마음을 받아들이던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던지, 아니면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해야 옳죠. 왜 어정쩡하게 희망고문을 하느냐고요. 저한테 윤 선생님은 언제나 웃으면서 만나고 가끔은 맘 놓고 화도 내는 너무 편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느니, 그래서 이런 관계 깨고 싶지가 않다느니, 이게 무슨 애매한 소리래요? 한 마디로 호구 노릇이나 계속 해달라는 얘긴지 원. 맹한 건지 타고난 여우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요.
그간 요즘 보기 드물게 의롭고 정 많은 두 윤 선생님들, 계상(윤계상) 씨와 지석 씨를 지켜보면서 자식들을 저리 반듯하게 잘 길러낸 부모님들은 어떤 분들이실까 궁금해해왔기 때문일까요? 제가 마치 지석 씨 어머니라도 되는 양 속이 상합니다. 문제는 여우과라면 질색을 하는 저지만 하선 씨만큼은 미워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얌통머리 없이 생겨 먹었으면 맘 놓고 뒷말이라도 하려만 그러기엔 너무나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요. 이건 왠지 억울한 심정이에요. 지켜보는 저도 이렇게 갈팡질팡 중이니 지석 씨는 오죽하겠어요. 낚싯줄에 걸린 고기 모양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겠죠. 도대체 <하이킥3>의 제대로 된 러브라인은 언제 생기는 걸까요?
지석 씨, 그냥 제가 좋은 처자 소개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되돌아보면 <하이킥> 시리즈 전작들의 멜로라인은 늘 ‘불가능한 사랑’ 쪽이었습니다. 실제로 연애에서 자유로운 캐릭터가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고 설령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대부분이었죠. MBC <거침없이 하이킥>의 경우, 이민용(최민용)과 서민정 선생(서민정)이 멜로의 중심이었지만 사실상 상대가 친구(신지)의 전남편인지라 도덕적으로 찜찜한 구석이 있었거든요. 또한 이윤호(정일우)도 담임인 서민정 선생을 짝사랑했지만,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은 열린 결말을 맞긴 했지만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습니다. 그 유명했던 MBC <지붕 뚫고 하이킥> 속 삼각관계도 마찬가지죠. 이지훈(최다니엘)과 황정음(황정음), 신세경(신세경)은 어떤 구도로 연결되든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으니까요. 일류대 출신에다 대학병원 레지던트인 지훈이야 사랑 앞에서 언제나 당당했지만 그에 비해 학벌을 속이고 준혁(윤시윤)의 과외 선생 노릇을 한 정음이나 입주 도우미인 세경은 자격지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죠.
이처럼 연애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모두들 연애에 목말라했습니다. 친구 역할인 범이(김범)나 세호(이기광)도, 사랑과는 이미 담을 쌓았을 것 같은 어르신들도, 지희(진지희)나 신애(서신애) 같은 어린아이들조차도 나름대로 연애를 꿈꿨고, 심지어 매너 좋고 배려심 있는 줄리엔(줄리엔 강) 선생을 향한 여성 캐릭터들의 묘한 줄다리기도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연애가 통 진전이 없습니다. 안내상, 윤유선 부부 말고는 모두에게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상황이건만 정식 고백은 지석 씨가 처음이니까요. 물론 엉뚱하게 고시생 고영욱이 고백을 선점하긴 했지만요. 작게나마 사랑의 불씨를 간직한 종석(이종석)이도 지원(김지원)이도 진희(백진희) 씨도 따로따로 마음뿐입니다. 사랑, 참 이상한 일이죠? 안 된다면 부득불 달려들어 목을 매고, 해도 된다고 하면 다들 팔짱 끼고 구경만 하니 말이에요. 아니면 미적지근 여지를 두며 앞뒤를 재는 게 요즘 세태인가요? 하선 씨의 본심이 뭔지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는 저로서는 그저 속만 터집니다. 지석 씨, 그냥 제가 감정 표현이 명쾌한, 좋은 처자 하나 소개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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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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