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부, R&D 36.5℃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1. 벌써 2000만 가입자를 돌파한 스마트폰. 어느새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이동통신사의 스마트폰 가입자(435만명) 중 65세 이상 가입자는 1.8%(8만명)에 불과하다. 노안이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 글씨를 읽는 것은 고역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2. 드럼통 모양의 빨래통을 돌리면서 물의 낙차를 이용해 빨래를 하는 드럼세탁기.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이 드럼 세탁기는 세탁조의 위치 때문에 세탁물을 넣고 뺄 때 허리를 굽혀야 한다.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설계를 할 때 드럼세탁기의 입구를 높이고 기울여 달았더라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최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박영석 대장이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실종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에 박영석 대장이 실종됐을 당시 가벼우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GPS 장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빠른 시간 내에 실종자들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이 기술은 어린 아이들의 위치를 찾는 데에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ㆍ산업의 눈부신 발전상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여기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만, '연구개발(R&D)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R&D가 만들어낸 최첨단 기술과 제품은 때론 우리를 불편하게도 만든다. 성장과 발전에만 집중한 나머지, 사람과 삶을 보듬지 못한 결과다.
기술개발이 산업과 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의 차갑고 딱딱한 편리함을 넘어, 인간에 대한 성찰과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따뜻한 기술개발이 절실하다. 기술개발이 산업과 경제발전을 이끄는 것 외에도, 이제는 기술이 그 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곳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함은 물론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기술이 돼야 한다.
지식경제부가 '인간의 얼굴을 한 R&D'로 내년도 R&D의 방향을 바꾼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른바 'R&D 36.5℃'요, 'R&D 4.0'이다.
◆ 기술에 '따뜻함'을 더한 'R&D 36.5℃' = 인간의 체온, 36.5℃가 의미하는 것처럼 사람의 체온을 가진 따뜻한 R&D이자, 사람들의 생생한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R&D를 뜻한다. 다시말해 'R&D 36.5℃'는 사람 중심의 따뜻하고 창조적인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R&D 전략이다.
지경부는 앞으로 R&D를 사람 중심의 '따뜻한 기술개발'과 '창조적 기술혁신'의 두 축으로 나눠 펼쳐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지경부는 따뜻한 기술개발을 위해 '국민편익 증진형 R&D'를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약자인 장애인, 여성, 아동 등을 위한 기술,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맞춤형, 문제해결형 기술 개발이 바로 '국민편익 증진형 R&D'다. 세탁통 입구를 기울인 드럼세탁기, LED(발광다이오드) 목발,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에스컬레이터, 점자 휴대폰 등이 그 예다.
지경부는 현재 장애인 편의 증진을 위해 추진 중인 '국민편익 증진형 기술개발(QoLT)' 사업을 일반국민의 수요에 부응하고, 생활여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맞춤형 문제해결형 기술개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기존 특허 활용 지원, 인증ㆍ표준화 지원 등을 통해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기존 복지체계와 연계한 판매, 보급 시스템 마련으로 국민편익 증진형 기술제품의 원활한 확산을 유도하기로 했다.
저개발 국가와의 기술협력도 확대한다. 저개발 국가 국민들이 필요로 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적정기술을 발굴해 새로운 산업자원 협력의 계기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테크노파크 등 한국식 산업기술 발전 모델을 전수하고 이와 연계한 교육, 기술훈련 등을 펴나가기로 했다. 이와함께 현지 인력의 기술역량을 제고하는 등 저개발국의 산업기술 역량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 미래를 여는 창조적 기술혁신 = 'R&D 36.5℃' 전략은 '따뜻한 기술개발'과 함께 '창조적 기술혁신'이라는 또 다른 한 축으로 구성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한 장면은 주연 배우인 톰 크루즈가 손으로 허공 속의 디스플레이를 조작하는 부분이다. 영화가 나온 2002년에는 영화 속 '공상'에 불과했지만 불과 7년 만에 실제로 구현된 기술이 됐다. 어디 영화 뿐인가.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창조적 천재들이 꿈꾸던 기발한 상상들이 하나 둘씩 현실이 되고 있다. 이렇듯 한때는 공상에 불과했던 일들이 어느새 현실이 돼 가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창조적 기술혁신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경부는 이러한 창조적 기술혁신을 위해 산업기술과 인문학간의 융합을 활성화 하기로 했다. 산업기술과 인문학간 융합을 활성화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문 기술 융합 연구소(가칭)가 설립된다.
연구소는 인문사회와 산업기술 분야의 소통ㆍ융합ㆍ공동연구 활성화를 위한 허브로서 기능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사회예측, 융합분야 정책연구 등의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일단 내년 2월 산업기술진흥원(KIAT)의 부설 연구소로 우선 설립한 후,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추후 별도의 독립 연구기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경부는 융합을 주제로 하는 교육과정을 신설 또는 확대해 대학(원)에서 융합 교육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여해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지성형(Crowd Sourcing) 융합문화 카페를 만들고, R&D에 일반 국민이 폭넓게 참여토록 유도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활용키로 했다.
이밖에 지경부는 연구개발 포상금 제도, R&D 행정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연구자들의 연구 여건을 조성하고, 융합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모전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융합문화 조성할 계획이다.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기술문화 정착을 위해 '산업기술 문화공간'도 만들어진다. 구체적 건립방안 검토 및 공감대 형성 등을 위해 올해 말까지 산업기술 문화공간 건립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부터 산업기술사 정리 및 주요 유물확보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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