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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땅콩집' 열풍 무엇을 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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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땅콩집' 열풍 무엇을 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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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 교수]한 달도 남지 않은 2011년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서민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주택 사정이 어려웠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 쇼크로 촉발된 경기 악화는 부동산 경기를 크게 위축시켰고 사람들은 집을 사기보다는 집값 하락을 기다리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이러한 상황은 극심한 전세난을 부추겼고 정부의 몇 차례 전ㆍ월세 안정화 대책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11월 기준으로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전국 평균 60%, 서울은 50%를 넘어섰다. 서울을 기준으로 지난 3년간 전셋값은 21.1% 상승했으며 마포구의 경우 42.5%나 올랐다. 2000년 이후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대한민국에 '땅콩집' 열풍이 불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으로 수도권에 한 가구당 30평가량의 실내공간과 36평 정도의 공동마당을 갖춘 듀플렉스(duplex)형 단독주택 짓기 프로젝트가 소개되면서, 아파트 값과 대출금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저당잡힌 도시인들은 삶과 주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땅콩집 짓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가늠하기에는 그것이 갖는 의미가 사뭇 크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주거유형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1995년 26.8%에서 2010년 47.1%로 15년 사이에 무려 75.7%나 증가했다. 반면 단독주택 거주 비율은 59.5%에서 39.6%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1~2인 가구가 1995년 16.9%에서 24.3%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중대형 주택 비중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서울을 기준으로 2020년 1~2인 가구가 전체의 46.2%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을 감안하면 심각한 도시주거 수급 부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때에 나타난 단독주택 짓기 프로젝트, 땅콩집은 정부 대책과는 상관없이 민간에서 피어난 자구책이라 볼 수 있다. 도시주거 수급의 불균형과 아파트촌의 삭막함을 보완하려는 민간 처방인 땅콩집은 여러 가지 예견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매력을 뿜어내며 다가왔다.


작지만 내 아이가 뛰놀 수 있는 마당, 그리고 이웃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 사실 이것은 대단하고 새로운 매력이라기보다는 지난 40여년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이다. 그러한 매력이 지나친 전셋값 상승으로 인하여 다시금 보이게 된 것이다.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려 하니, 잃어버렸던 옛 가치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주거는 개발업자에 의한 단순한 도시계획의 결과물로 존재해 왔다. 시민이 가꾸고 생활하는 터전과 장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집이란 것은, 동네란 것은 주민이 스스로 만들 때 그 가치를 발할 수 있다. 도시란 결국은 시민들이 편하게, 건강하게, 즐겁게, 애착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정주지여야 하는데 우리의 도시는 이러한 점에서 아직 크게 미흡하기만 하다. 그런 점들을 감안할 때 땅콩집은 이미 여러 도시에 불기 시작한 마을 만들기 운동과 더불어 주민의 힘으로 집과 도시를 바꾸려는 노력이요, 새로운 가치를 표출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2011년은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도시와 주택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땅콩집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선택은 도시와 건축의 다양성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시작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작이 내년에는 더 나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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