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인생역전을 바란다기 보다는 매주 5000원어치의 희망을 사는 거지요. 연금복권이 나온 뒤엔 로또보다 그 쪽에 더 관심이 가요." 회사원 박경식(46) 씨는 매주 복권을 산다. 최고액에 당첨된 기억이라야 5000원이 고작. 하지만 박씨는 "적은 돈으로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꿈을 꿀 수 있으니 건강한 일탈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자영업을 하는 최철호(64·가명)씨에게 로또는 악몽이다. "로또가 처음 나왔을 땐 매주 수 십만원을 로또 사는 데 쏟아부었어요. 이젠 그렇게 살 수도 없게 됐지만… 복권을 사지 않으면 당첨금을 꼭 남에게 빼앗기는 것 같았거든요. 복권때문에 아내와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기도 했지요." 최씨는 한 때 퇴직금에까지 손을 대며 복권에 집착했지만, 결국 남은 건 빈 통장 뿐이었다.
이렇게 복권을 보는 두 개의 시선이 정부 안에서도 맞서고 있다. 경제 상황이 나쁜데 복권이 너무 잘 팔리자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복권 판매 중단을 권고하고 나선 것이다. 반면 복권 사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현실적으로 판매를 막기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감위가 설정한 올해 복권 매출 총액은 2조8046억원. 하지만 복권위가 11월까지 판 매한 복권 총액은 이미 2조7948억원에 이른다. 씀씀이가 커지는 연말에는 통상 복권 판매액이 늘어 복권위가 예상하는 올해 총 매출은 3조1000억원 규모다. 사감위는 2009년 기구 설립 이후 처음 복권 매출액이 한도액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자 복권위에 사실상 로또 판매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복권위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다 전국 1만8000곳에 이르는 복권방 자영업자들의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권위는 이미 두 달 전부터 한도 초과를 예상했지만, 지난 10월 전체회의에서 "총량 초과에 따른 문제보다 판매 중단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커 판촉을 자제하되 인위적인 판매 금지는 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복권 격주 발행이나 판매시간 제한도 검토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냈다. 아예 사감위에 복권은 총량 설정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경마나 경륜, 카지노 같은 사업과 비교해 중독성이 훨씬 낮으니 달리 취급해 달라는 논리다.
사감위의 판매 중단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복권위가 판매 총량을 넘기면 이듬해 판매 총량을 줄이거나 사감위에 내는 분담금을 종전 1억5000만원 안팎에서 3억~4억원 수준으로 올려받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 돈은 도박 중독 치유 등을 위해 쓰인다.
일각에선 정부가 구속력 없는 사감위 규정을 내세워 복권 열풍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인다. 분담금을 올려도 판매 수익에 비해 극히 적은 액수인데다 복권 판매액의 40.5%가 재정수입으로 잡히는 까닭이다. 복권위의 예상대로 올해 복권 판매액이 3조원에 이른다면, 여기서 1조2000억원은 기금 수입으로 잡혀 사실상 정부 예산으로 쓰이게 된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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