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공무원들이 움직였어야 했다. 개별적으로 여야 의원들을 만나 설득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선 아무런 지침도 독려도 없었다."
정부 부처의 한 차관급 인사가 최근 한미 FTA 표결을 지켜보면서 피력한 소회다. 청와대가 국회에 공을 넘겨놓고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장ㆍ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전방위로 뛰었다면 분위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판에 직접 국회를 찾아가 여야 대표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지만, 이미 야당은 '절대 여당과의 협상은 없다'는 방침을 굳힌 상황이었다.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표결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인상만 남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미 FTA 비준을 코앞에 두고 청와대의 '콘트롤 타워' 기능이 상실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한미 FTA 비준 정국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나 백용호 정책실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미 FTA에 관한한 이 두 실장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임 실장은 "자기 사람 심기에만 바빴다"는 비판을 청와대 안팎에서 받고 있다. 이들이 향후 임 실장의 정치행보에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고 보는 청와대 참모들도 많다.
요즘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등 실무 참모진들을 만나보면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 총선 준비를 위해 주말마다 지역에 내려가기 바쁜 사람도 있고, 공기업이나 민간분야로 옮기기 위해 출구전략에 골몰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안타깝게도 '남은 1년여동안 이명박 정부의 마무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부처에서 파견 나온 관료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캠프 출신의 별정직 공무원들조차 대통령에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다. 내심 전략공천을 기대해온 참모들의 섭섭함은 더욱 크다. 이런 얘기들을 듣고 있으면 '레임덕(권력누수)이 왔다'는 것 이상으로 느껴진다. 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내려앉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청와대 현직 참모가 이런 말을 했다. "이 대통령은 퇴임 후 참 외로울 것이다.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지금 청와대엔 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니라 대통령실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청와대가 남은 기간 무엇을 해야 할 지 명확한 목적의식을 부여해야 한다. '자기 정치'가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몰두해야 한다. 참모들과 막걸리라도 함께 마시며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남은 1년을 함께 하자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향후 인사에서 그런 대통령실장을 찾아내는 건 이 대통령의 몫이다. 이 대통령은 정권초기부터 인사와 관련해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이 이 대통령이 사람 보는 안목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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